오늘 '최저임금 차등' 표결 전망…36년 '단일체제' 유지될까
결과 어떻든 반발 불가피…역대급 '느린' 최저임금 심의되나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을 두고 노사가 강경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27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이 이뤄진다.
경영계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특히 숙박업과 음식업은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면서 구분 적용을 요구하는 반면에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 생활 수준'이라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 취지와 목적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고 반발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중 사용자 측은 구분 적용 전원 찬성, 근로자 측은 전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표결의 향방은 정부가 인선한 공익위원의 손에 달렸다.
노사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상황에서 표결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한쪽의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법정 심의 기한(6월 27일)을 넘기게 된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36년간 '단일 최저임금'…노사 매년 충돌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1988년 단 한 차례 이뤄졌다.
당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28개 업종을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최저임금이 높은 철강과 기계 등 2그룹 임금이 식료품과 섬유 등 1그룹보다 5% 많았다.
이후 1989년부터 올해까지 36년간 '단일 최저임금 체제'가 유지됐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는 업종별 구분 적용 규정이 사문화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구분 적용 규정을 삭제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으며 22대 국회 들어서도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구분 적용 폐지가 노동계만의 주장은 아니라는 것이 노동계 설명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최저임금법을 제정할 당시 정부는 '전 산업 단일 최저임금'이 목표이고 구분 적용 근거는 당시 여건 때문에 불가피하게 포함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동계는 구분 적용이 사업주에게도 좋은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이 설정된 업종은 '기피업종'이 돼서 인력난을 심해지고 결국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경영난은 '최저임금 상승'보다는 높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카드 수수료, 자영업자가 지나치게 많아 발생하는 과당경쟁 때문이라는 주장도 노동계에서 나온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노동자는 301만1천여명, 최저임금 미만율은 13.7%였다.
특히 농림어업(미만율 43.1%)과 숙박·음식점업(37.3%)이 미만율이 높았다.
다만,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이 구분 적용의 이유가 되려면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준법의식 부족' 등이 아닌 오직 경영난에 있어야 한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이 이어져 부담이 누적됐다고도 주장한다.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경총 전무는 25일 5차 전체회의에서 "최저임금이 중위임금 50%에도 못 미칠 때는 구분 적용 필요성이 적었지만 이미 5년 전 중위임금 60% 수준을 넘어섰다"라고 지적했다.
복수 최저임금제 채택국가 대부분 '상향식'…한국은 '하향식'
모든 국가가 '단일 최저임금 체제'인 것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90%에 최저임금제가 있으며 이들 중 53%는 단일 최저임금제, 나머지는 복수 최저임금제를 채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가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19개국이고 '국가 최저임금을 기본으로 하면서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11개국, '국가 최저임금 없이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9개국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복수로 존재하는 나라들도 대체로 특정 업종에 임금을 더 주는 '상향식' 형태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는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이를 주장하는 경영계가 최저임금 미만율을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특정 업종에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하향식'으로 이해된다.
영토가 넓어 지역별 경제 격차가 크거나 연방제인 국가 등을 제외하고 한국과 상황이 비슷하면서 복수 최저임금이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47개 도도부현별로 최저임금이 설정되고 필요에 따라 '특정최저임금'(업종별 최저임금)도 정해지는 구조다. 특정최저임금은 사업장 소재지 최저임금보다 높아야 한다고 법에 명시돼있다.
공익위원이 '캐스팅 보트'…'시급 1만원' 넘을까도 관건
최저임금 구분 적용 여부가 표결에 부쳐지면 다른 최저임금 관련 사항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공익위원 손에 결정되게 된다. 사용자위원은 전원 찬성, 근로자위원은 전원 반대하는 가운데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것이다.
최근 표결 결과를 보면 2019년 최저임금을 정한 2018년 최저임금위에서는 출석위원 23명 중 14명이 반대, 2019년에는 27명 중 17명, 2020년에는 27명 가운데 14명이 반대해 부결됐다.
2021년엔 15명이 반대, 11명이 찬성, 1명이 기권했고 2022년엔 16명이 반대, 11명이 찬성했으며, 작년엔 15명이 반대, 11명이 찬성했다.
만약 최저임금 구분 적용 방안이 통과되면 올해 최저임금위는 장기간 파행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노동계가 특수고용노동자(특고)와 플랫폼 종사 노동자 등 '도급제 노동자' 별도 최저임금 설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구분 적용이 이뤄진다면 노동계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가뜩이나 늦어진 최저임금 심의가 더 느려질 수 있다.
이날이 최저임금위가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마쳐야 하는 법정 기한인데 구분 적용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느라 경영계와 노동계는 최저임금 수준 요구안도 아직 내놓지 않았다. 7월 19일까지 역대 최장 심의를 이어간 작년보다 느린 행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9천860원으로 '1만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올해보다 1.4%만 인상돼도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1만원이 된다.
노동계는 최초 제시안 기준 2016년도(2015년 결정)부터 시급 1만원 이상을 요구해왔다.
경영계는 2008년도(2007년 결정)부터 2018년도(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동결 또는 감액을 요구했다. 감액을 요구했을 때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인 2010년도(2009년 결정)와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0년도(2019년)와 2021년도(2020년)였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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