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영향력 공작’ 대비할 때다[시평]
북한과 러시아 군사동맹 복원
더 임박한 위협은 심리·인지戰
중·러 노하우 北 전수 가능성
국정원의 관련 기능 강화 시급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하고
국가보안법 보완에도 나서야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을 국빈방문했다. 비록 ‘당일치기’라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북한과 러시아 정상은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조인하면서 24년 이전으로 양국 관계를 되돌려놨다. 우리의 이목은 조약의 제4조에 모두 집중됐다. 일명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다. 핵무기와 핵 반격 능력을 갖춘 나라들이 다시 동맹이 되면서 국내외 일각에서는 우리의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제기한다.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북·러 군사 협력 정황 증거를 보면 말이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 등 핵무기 능력과 위력 향상을 위한 양국의 군사 기술 협력 강화를 예측한다. 그 논거는 지난해 북·러 고위급회담 이후 추정되는 결과에서 비롯된다. 가령, 7월의 러시아 국방장관 방북과 9월의 김정은 위원장 러시아 방문 이후 이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는 정황적 증거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임박한 북·중·러의 위협은 심리전과 인지전을 동원한 이들의 영향력 공작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다. 모든 관심과 이목이 가시적인 무기 성능 향상 가능성에 집중된 탓이다. 반면, 심리·인지전은 3국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군사작전이다. 여기에 국내외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등용 가능성이 큰 인물로 추정되는 엘드리지 콜비 전 국방부 차관보 역시 이 점을 가장 심각히 우려한다. 그는 자신의 2021년 저서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에서 중국의 영향력 공작 심각성을 제기하며 미국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런 그의 미래 군사·국방 전략 구상에 우리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기능 및 역할 조정, 우리의 방위비 부담과 방위 분담 제고 등의 가능성에 더 민감해했다. 그러나 그의 전략 구상 비전과 아이디어의 기초이자 근간은 중국의 영향력 공작이다. 심리전·인지전·법률전 등 이른바 ‘3전(戰)’을 선제적으로 대응한 전제에서 중국의 군사력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한미동맹 기능과 역할의 조정 당위성이 제기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대상으로 영향력 공작을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그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이를 북한에 전수하면 북·중·러 3국의 동시다발적인 심리전과 인지전 작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미국의 대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2년 후면 지방선거와 대선 정국에 진입하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인지전 공세가 예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영향력 공작이 선거철에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향력 공작은 평시에 전개된다. 장기간 지속적인 공작을 통해 누적 효과를 보는 것이 영향력 공작의 핵심 전략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북·중·러 3국의 심리·인지전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정부 당국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실추된 국정원의 명예 회복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우리 정보원들이 다시 사명감을 되찾고, 국가안보에 헌신할 수 있다.
국회는 외국의 영향력 공작 대응 관련 법안 마련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사이버와 현실 공간에서 외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법제의 부재는 세계 사이버 안보 질서 구축 과정에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제법의 구축은 국내법에서 출발한다. 국내법에 의거해 세계의 사이버 안보 질서가 확립된다. 그리고 공조 체계가 형성된다. 우리 법안이 마련돼야 우리의 발언권과 지분이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외국인 대리인 등록법(FARA)’ ‘외국인 방첩법’ ‘사이버 안보법’ ‘정보법’ 등도 없다. 국가보안법도 심리·인지전 등 영향력 공작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한다.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위한 당·정의 긴밀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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