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가 호텔···소설 ‘백야행’ 배경, ‘후세’가 살아났다[일본 위기도시를 가다②]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후세(布施)’는 다이쇼 시대(1912~1926년)부터 번성한 유서 깊은 번화가다. 1914년 후세역 개통 이후 오사카와 나라를 연결하는 교통 허브 역할을 했다. 역 앞에는 ‘쁘띠로드’와 ‘플라워 로드 혼마치(본정·本町)’ 등 여러 상점 거리가 맞물려 있다.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70~90년대를 배경으로 쓴 작품 ‘백야행’의 무대로 등장할 만큼 긴 시간 번영을 누렸다. 오사카 중년층에게 쇼와 시대(1926~1989년) 부모와 함께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던 추엇이 깃든 장소다.
100년 번성 후세 상가···저출생 고령화에 쇠락
100년을 이어온 후세 상가의 영광도 일본에 불어닥친 저출생·고령화 바람을 버티지 못했다. 인구 감소로 후세역 이용객이 줄자 매출이 떨어졌다. 여기에 긴 경기 침체로 히가시오사카 중소기업 단지 회사들이 대거 폐업하면서 상가는 타격을 받았다. 새 도심에 대형 쇼핑몰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후세 대신 난바(難波)와 우메다(梅田)를 찾기 시작했다. 끝내 점포는 줄줄이 문을 닫았고 후세를 대표하던 극장도 사라졌다.
상가가 쇠락하자 상인들은 낡은 점포와 집을 버리고 떠났다. 후세 상점 대부분은 1층을 점포로 쓰고 2층에 사람이 거주하는 목조형 주택으로 일종의 주상 복합주택이다. 후세가 속한 히가시오사카시의 빈집률은 16.3%로 일본 전국 평균(13.8%), 오사카부 평균(14.3%) 빈집률을 넘어선다.
골치거리 전락한 일본 빈 집···전국 900만채
일본은 빈 집을 철거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게 세금을 덜 낸다. 토지에 붙는 고정자산세의 경우 주택이 들어서 있으면 6분의 1로 경감된다. 소유자가 빈 집을 허물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다.
1인 거주자가 사망한 뒤 상속이나 증여를 받을 사람이 없는 사례가 많고, 상속 받더라도 철거·수선 비용이 부담돼 그대로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인구 과소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빈 집은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총무성이 공표한 주택·토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빈 집은 900만채로 1993년 448만채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
빈 점포만 떼어 놓고 봐도 공실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일본 중소기업청의 상점가 실태 조사를 보면 상점가의 평균 점포 수는 2015년 54.1개에서 51.2개로 줄었다. 후세처럼 쇠퇴하는 상점가는 빈 점포 증가가 두드러진다. 700여개 점포가 성업했던 후세 상가에는 현재 350여개 점포만 남았다.
상가 골목에 문 연 호텔···객실·식당 모두 빈집 활용
줄줄이 셔터를 내린 ‘샷타도오리(シャッタ-通り·폐점해 셔터내린 가게들이 많은 거리)’ 틈에서도 몇몇 상점들은 꿋꿋이 매장을 지켜냈다. 100년 간 문을 연 제과점, 91년 전통 일식집, 창업 70년 튀김 가게, 90세 할머니가 운영하는 시치미 매장은 여전히 후세에서 손님을 맞는다. 2018년 후세 상가 골목에 문을 연 ‘세카이 호텔’은 후세 노포의 전통과 역사에 주목했다.
세카이 호텔은 마을 곳곳에 방치된 목조 주택을 개조해 객실로 만들었다. 호텔 프론트도 옛 여성복 매장을 활용한다. 옛 모습을 남기기 위해 호텔 간판도 옛 여성복 매장 그대로 뒀다. 객실로 바뀐 상가 주택은 모두 7곳으로 현재 추가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다.
호텔은 객실만 운영할 뿐 다른 호텔과 달리 레스토랑과 카페, 사우나와 같은 별도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 대신 인근 식당과 목욕탕, 커피숍과 같은 상점과 제휴를 맺고 숙박객에게 이용을 권한다. 조식은 인근 카페에서, 석식은 인근 이자카야에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식사 패키지를 예약한 숙박객은 추가 비용없이 제휴 식당을 골라 이용하면 된다. 객실 목욕 시설과 별개로 숙박객에게는 동네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준다. 이른바 ‘세카이 패스’로 이용 가능한 상점은 8곳이다. 제휴 여부는 상점이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상생 협력 모델이기 때문에 제휴로 매출이 오른다 해도 이윤 배분 등 호텔과 상점 간 금전 거래는 일체 이뤄지지 않는다.
“상가 전체 활성화가 호텔 설립 취지”
호텔 제휴 상점이 아니더라도 검증된 가게는 숙박객 추천 리스트에 올리고 방문을 권한다. 지난 3일 만난 세카이 호텔 후세 프로젝트 매니저 키타가와 마리씨(25)는 “후세를 몰랐던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마을 전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호텔의 설립 취지”라며 “제휴 점포가 아니더라도 추천한 곳에서 방문객이 만족하면 그것만으로도 호텔의 만족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후세의 좋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상가 마을을 통째로 거리 호텔로 쓴다는 구상은 5년여 만에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숙박객은 5438명으로 2018년 310명에서 17배나 뛰었다. 외국인 숙박객 비중은 3%에 불과하지만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지난 2월 호텔을 방문한 다이스케 시마씨는 “쓸쓸한 상점가에 묻혔던 매력을 발굴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후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속에 즐거운 여행을 했다”고 평가했다.
주변 상점의 매출도 오르고 있다. 제휴 상점의 이용 횟수는 2018년 14회에서 지난해 3671회로 늘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성공적인 빈 집 활용 모델 중 하나로 세카이 호텔을 선정했다.
호텔 매니저 기타가와 마리씨는 “마을 전체가 소화할 수 있는 관광객 수는 하루 76명 정도”라며 “무리해서 확장하지 않고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되 후세를 찾는 이유가 호텔 그 자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오사카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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