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60명 배우가 한몸처럼 뭉친 현장…불같은 에너지 느껴져"[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하정우, 여진구, 성동일 주연의 영화 '하이재킹'이 지난 21일 개봉해 개봉 이후 연속 6일째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초여름 스크린을 찾는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영화 '1987'과 '백두산'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한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하이재킹'은 1971년 대한민국 상공에서 여객기가 공중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극한의 상황을 그렸다. 비행기를 납치해 이북으로 향하려는 납치범 용대와 그와 맞서 50여명의 승객의 목숨을 구하고 이북행을 저지하려는 부기장 태인(하정우), 기장 규식(성동일),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일촉즉발의 사투가 그려지며 촘촘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웃음기를 쏙 빼고 진정성을 담아 승객을 구하기 위한 목적 하나를 위해 폭발적 에너지를 선보이며 먹먹함의 끝판왕을 선보인 하정우, 성동일의 열연과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극도의 핍박을 받으며 자라 결국 비행기 납치에 나서게 되는 용대 역을 맡아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선배 배우들의 칭찬을 받은 여진구의 날선 연기 등은 정공법으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김성한 감독과 김경찬 작가 등의 제작진과 만나 오락 장르로서의 서스펜스물을 넘어서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부기장 태인 역을 열연한 하정우와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최근 한 기자분이 제 필모그래피에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들이 연속됐다는 공통점을 짚어주셨어요. 정말 '아가씨'이후 맡은 작품들에서 대의를 위한 정의감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더라고요.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그건 아마 그 당시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들의 커다란 흐름 아니었을까요? '하이재킹'은 시나리오 후반부의 먹먹함이 저에게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성동일 형이 먹먹함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극 후반부 태인이 숭고한 행동을 한 후 끝까지 조종간을 놓치지 않고 착륙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클래식하죠. 김성한 감독님이 이 장면을 덤덤하게 연출해내셔서 영화의 힘은 도리어 세졌어요."
극중 태인은 촉망받던 공군 전투기 조종사에서 납북 여객기의 격추 명령 거부로 인해 강제 전역 당한다. 이후 민간 항공사 여객기의 부기장이 되어 김포공항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하이재킹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는 인물이다. '하이재킹'은 특히 실제 비행기가 납치된 1시간 10여분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듯 리얼 타임으로 구현해냈기에 비행기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짐벌 위에 비행기 세트를 올려놓고 촬영을 했어요. 매우 좁은 공간이고 60여명의 배우가 한 공간 안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비행기 문을 닫으면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3개월 동안 전 배우가 출퇴근 하듯 대전 세트에서 촬영을 하니 집중력도 높아졌고 팀워크도 올라갔죠.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 공간에서 1시간 10분간 벌어진 일을 리얼타임으로 전달해야 하기에 아주 작은 실수나 오차도 발생하면 안됐어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논리적인 서사를 지닌 것이 아니라 여진구가 연기한 용대의 결정이나 돌발적 행동으로 인해 즉흥적 상황이 발생하고 또 비상사태에 맞대응하는 내용으로 펼쳐지기에 감정적 리액션을 제대로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런 점에서는 김병우 감독과 함께 했던 '더 테러라이브'의 경험이 도움이 됐죠.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지독할 정도로 모니터링을 다시 했어요. 이전에 찍은 장면을 돌려보고 전체로 묶어서 다시 확인하면서 한회차마다 집중력을 가지고 임했죠. 장소의 변화나 시간의 변화가 없기에 그만큼 한가지를 놓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었어요. 김성한 감독님의 지휘 아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움직였습니다."
사연 있는 악역 용대를 연기한 여진구는 '하이재킹'을 통해 완벽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났다. 국민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당장 가져다버려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열연을 펼치며 대선배인 하정우, 성동일과 대등한 에너지를 뽐냈다. 하정우는 예능 프로그램 '두발로 티켓팅' 촬영 현장에서 여진구를 적극 캐스팅하며 캐스팅 디렉터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두발로 티켓팅' 촬영에서 진구를 처음 봤을 때 '용대가 맞겠구나' 직감이 느껴졌어요. 당시 다른 후보들도 있었는데 느낌이 왔어요. 바로 제작진에게 연락을 했죠. 사실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20대 초반의 청년이 어떻게 비행기를 납치했을까 하는 지점이 있었어요. 실제하는 사실이어도 영화적 개연성을 성립시켜야 하는데 여진구가 용대를 연기하는 것에서 그런 부분이 모두 해소됐죠. 여진구의 눈빛과 뜨거운 에너지가 많은 부분을 보완했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성동일 선배님 역할이 크셨죠. 동일 선배가 진구와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이신데 격의 없는 촬영 분위기를 계속 이끌어 주셨어요. 용대가 마음껏 분출해야 비행기 납치 논리가 성립이 되고 진구가 정말 편한 마음으로 융화해줘서 좋은 장면들이 나왔죠. 함께 해보니 연기의 힘이 너무 좋은 친구였어요."
전작에서는 고립된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면서도 매번 유머와 위트를 지닌 인물을 연기했다면 '하이재킹'의 태인은 모든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절체절명의 선택의 순간에 자신을 희생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인물이다. 웃음기를 쏙 빼고 사명감을 불태운 태인 역을 연기한 하정우에 대해 '숭고한 실화를 통해 전하는 가슴 먹먹함'이라는 평이 쏟아지는 이유다.
"태인을 연기하는 과정에서는 납치범이 폭탄을 들고 날뛰고 있고 이북으로 가자고 하는 상황에서 '어떤 아이디어든 짜내서 막아야 한다'는 고민을 주되게 했던 것 같아요. 용대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이 가장 중요했죠. '용대가 처음 협박했을 때 어떻게 리액션할 것인가', '규식과는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승객들은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 등 리액션을 심플하게 쌓아갔어요. 극 후반부 태인이 큰 부상을 입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촬영 당시에는 좀 더 처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극심한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착륙을 시키는 태인의 모습이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했거든요. 얼굴빛도 점점 잿빛이 되어 가도록 최혜림 분장실장님께 부탁하기도 했죠. 엔딩으로 갈수록 태인의 상황이 격랑의 위기에 놓이긴 하지만 연기적으로는 절제하고 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 사람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가슴은 뛰겠지만 외면적으로는 차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패턴과 태인의 방향성이 잘 맞았어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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