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저지른 사람이 책임도 지려나" 근생빌라의 질긴 덫과 희망
건축주가 만든 위반 건축물
이행강제금은 소유주가 내
부과 횟수 제한마저 사라져
이행강제금 경감 조치 시행
하지만 소급 적용 불가능
최대 2년짜리 한시적 조치
위반 행위자 책임 지려면
건축법 개정안 통과 필요해
몇몇 건축주가 근린생활시설과 빌라를 섞어 지어 '근생빌라'란 이름을 붙였다. 근린생활시설에 취사시설을 살짝 집어넣어서 주택이 아닌데도 주택처럼 보이게끔 만든 거다.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지금껏 책임을 면해왔다. 이를 주택인 줄 알고 사들인 애먼 소유주들이 책임을 져야 했다. 정부가 최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행령을 발표했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빌라에는 주차장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시민은 많지 않을 거다. 내용이 워낙 복잡해서다. 답을 말하면 공동주택은 1세대당 1대다. 1층이 필로티(Pilotiㆍ기둥) 주차장이고 1개 층에 2호씩 있는 5층 빌라가 있다면 적어도 8대를 주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의 주차장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인허가를 받을 수 없다.
물론 꼼수를 부릴 순 있다. 주차장 규제가 덜한 건물을 섞어 짓는 거다.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만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근린생활시설은 주거지역에 필요한 세탁소ㆍ약국ㆍ미용실 등을 만들 수 있는 건물이다. 여기에 취사시설 등을 설치해 주택으로 이용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근린생활시설을 집처럼 꾸며놓는다면 차이를 알아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주차장 면적을 맞추기 위해 '근생빌라'를 만드는 건축주나 업체는 2층은 근린생활시설로, 3ㆍ4층은 다세대 주택으로 만든다. 원칙대로라면 2층의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으로 쓸 수 없지만 일반 시민들은 '다세대 주택'과 함께 붙어 있는 근린생활시설을 '같은 주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빌라 분양업체나 공인중개사가 "근린생활시설이어도 주택으로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 내집 마련에 초조해진 사람들은 이를 믿고 분양을 받기도 한다. 인허가를 '근린생활시설'로 받은 다음 싱크대ㆍ가스레인지 등을 설치해 '취사시설'을 만드니, 지자체가 꼼수를 적발하는 것도 쉽진 않다.
그렇다고 지자체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 근생빌라에 전입신고할 때 지자체는 이를 확인할 수 있지만, 관례적으로 그냥 넘긴다. 근린생활시설에 입주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위반건축물 여부를 추가로 확인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이 때문에 근린생활시설로 인허가받은 '근생빌라'를 매입해 입주한 사람들은 황당한 일을 겪곤 했다. 매입하거나 입주한 후에야 위반건축물로 적발되는 사례가 숱해서다.
지자체의 단속에 걸리면 주택으로 불법 개조한 '근생빌라'를 원상복구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그나마 2019년 전까진 정부가 이행강제금을 특정 횟수(5차례)만 내면 더 이상 부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이행강제금은 '무제한'이 됐다.
그럼 이행강제금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원상복구밖에 없다. '취사시설'을 모두 빼야 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원상복구'는 곧 주택으로는 더 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생빌라가 유일한 집이고 재산인 사람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위반건축물인 '근생빌라'가 팔리지도 않으니 끌어안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근생빌라를 사들인 사람들이 "위반건축물 단속 대상에서 (근생빌라를) 제외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취사시설을 설치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고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냐"며 해당 건축물의 양성화를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도 대응책을 내놓긴 했다. 2024년 6월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시행령을 고치면서 이행강제금 경감 범위를 50%에서 75%로 늘렸다. 6월 27일 이후로 적발되는 위반 건축물의 경우 이행강제금을 75%까지 줄여준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첫번째 문제는 기간이다. 국토부가 바꾼 시행령의 최대 기간은 2년이다.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조례로 1년에서 최대 2년까지 이행강제금 경감을 받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경감 조치가 끝난다.
두번째 문제는 경감 대상이다. 이번 건축법 시행령은 6월 27일 이후 적발되는 위반건축물부터 적용한다. 201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행강제금을 계속 부과받은 경우는 빠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칙을 보면 6월 27일부터 적발하는 경우에만 개정한 건축법 시행령을 적용한다"며 "기존에 부과한 이행강제금은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22대 국회에 이런 법적 미비점을 바꿀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송옥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크게 네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처분 대상을 위반 건축 직접 행위자로 한정, 이행강제금 감경 대상 주거용 건축물로 확대, 부과 횟수 상한(5회) 신설, 감경 비율 90% 이상으로 확대다.
예컨대, 이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 근생빌라를 불법 개조한 건축주가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여태까지는 위반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소유주가 이행강제금을 내야 했다. 부과 횟수 상한선도 다시 생긴다. 다만,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건축법 시행령과 마찬가지로 법 시행 이후 적발되는 건물에만 해당한다. 여태껏 이행강제금을 떠안은 사람에게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양성화'다. 2019년 이후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하는 '근생빌라' 소유주들이 가장 원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행강제금을 잠시 미루거나 경감하는 것만으로는 대출금과 이자까지 감당하기 역부족이어서다.
마찬가지로 송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특정건축물정리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2014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양성화의 길이 열린다. 2014년 법은 전용면적 85㎡ 이하 다세대 주택, 연면적 165㎡ 이하 다가구 주택을 제외한 단독주택, 연면적 330㎡ 이하 다가구주택이 대상이었지만 현재 발의된 법은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고 주택으로 전용한 주거시설을 포함한다.
2014년 당시에는 신청 주택의 94% 이상이 양성화했다. 하지만 위반건축물을 막는 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양성화 법안과 함께 이행강제금의 처분을 건축주에게 내리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내집 마련의 꿈을 꺾는 위반 건축물을 이번엔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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