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임공관장 논란 <상>] '런종섭 방지법' 해외사례 살펴보니
김준형 "수사대상·출국금지자 대사임명 세계최초"
美英日 등 '정치적 임명' 있어도 자격제한 규정 無
[더팩트ㅣ국회=조채원 기자] 채해병 특검 찬성 여론에 불을 지핀 '런종섭 사태' 재발을 방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18일 대표 발의한 외무공무원법 일부개정 법률안, 이른바 '런종섭 방지법'이다.
특임공관장 제도는 외무고시 또는 2013년부터 치러진 외교관 후보자 시험을 합격한 직업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외교관으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대통령이 특별히 재외공관의 장(대사, 총영사 등)으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관 순혈주의'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강하고자 한 조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이나 자질이 떨어지는 대선 캠프 출신 인사나 대통령 측근이 재외공관장에 배치된 사례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김 의원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은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데다 비상식적인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3월 채해병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피의자이자 출국금지 상태로 대사에 임명됐고, 외교관용 관용여권을 발급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김준형 1호 법안 '런종섭 방지법' 내용은
런종섭 방지법에는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상 행위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 임명 시 조사나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 △헌법, 국가보안법, 중대재해처벌법, 공직자윤리법에 위배되는 행위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 임명 시 조사나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 △출입국관리법 제4조에 따라 출국이 금지된 자를 특임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에 "헌법, 국가보안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의 중대성을 고려한 조치이자 조사나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로 완화규정을 뒀다"며 "헌법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할 공직자라면 국민적 상식에 맞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정권은 수사대상자이자 출국금지 대상자인 이 전 장관을 특임공관장에 임명하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며 "특임공관장 임명을 통제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재발할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적으론 중요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지체시켰고 대외적으로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초래한 국제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공동 발의에 참여한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활용하자는 특임공관장 제도가 보은인사로 변질됐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런종섭 사태'는 그런 차원을 넘는 최악의 악용 사례"라며 "사법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특임공관장 제도 악용을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종섭 방지법' 해외사례 있나 살펴보니
입법조사처가 김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 기소됐거나 수사 중에 있는 자의 특임대사 임명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 임명에 대해 자격을 규정·제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대사 임명 시 외무공무원선발을 통과하고 국무부 근무경력을 쌓은 고위 외무공무원을 대상으로 선발하거나, 대통령에 의한 정치적 임명을 통해 이뤄진다. '외국 주재 미국대사의 직위는 대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명백히 입증된 남성 또는 여성에게 부여돼야 하며 어떤 개인도 정치 캠페인에 대한 재정적 기부를 이유로 대사직을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있다. 그러나 '기소 및 수사 중에 있는 자'에 대한 대사 임명 제한과 관련된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영국은 대사 임명과 관련된 요건이나 자격을 법률로 의무화하지 않는다. 영국의 재외공관장은 대부분 직업 공무원으로 외교부 직원 중 선발되고 최종적으로 버킹엄궁(국왕)의 승인을 받는다. 정치적 임명은 제도적으로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도 대체로 외무성 직원 가운데 대사를 임명한다. 외무대신의 청에 의해 내각에서 이뤄지며 천황이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직업 외교관 외에 각계 전문가 및 타 부처 공무원이 퇴임 후 각국 대사로 임명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라키 에이키치(新木栄吉) 전 일본은행 총재가 주미 대사를, 후루카키 테츠로우(古垣鐵郎) NHK회장이 주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사례가 있다.
수사 중이거나 기소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예는 없지만 대사로 파견된 이후 수사와 기소 대상이 된 경우는 있다. 바로 빅터 마누엘 로차(Victor Manuel Rocha) 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다. 미국 연방 검찰은 지난해 12월 로차 전 대사를 국무부에 입부한 첫 해부터 퇴직 후까지인 약 40년간 쿠바의 정보기관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했다. 로차 전 대사는 지난 4월 1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대통령 '낙점' 인사 검증 실효성 의문…절차 강화 목소리도
외무공무원법과 외무공무원임용령에 따르면 재외공관장 후보자는 외교부 공관장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는다. 인사 검증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을 통해 이뤄진다. 외교부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능력과 평판 등을 쌓아 온 직업 외교관은 다면 평가가 비교적 용이한 측면이 있다. 반면 외교부 밖에서 경력을 쌓은 특임공관장 후보자를 대상으로 교섭능력·업무수행능력·지도력 등 계량화하기 어려운 능력들을 제대로 심사할 수 있을 지, 대통령이 낙점한 인사를 대통령실이 엄정하게 검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러다보니 '런종섭 사태' 이전부터 특임공관장 자질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주로 임명 후 공관장이 저지르거나 이후 밝혀진 비위 행각이 계기가 됐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김정기 전 상하이총영사 등이 연루된 '상하이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상하이 스캔들은 몇몇 상하이 주재 외교관이 30대 중국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여러 정부 자료를 넘겨준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6월엔 김도현 전 주베트남 대사, 같은 해 7월 도경환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청탁금지법 위반과 폭언 등 갑질 행위로 해임처분을 받은 바 있다.
특임공관장 임명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사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5월 유재경 전 삼성전기 전무 주미얀마대사 임명건이 있다. 유 전 전무는 2017년 국정농단 특검 참고인 조사에서 대사 임명 전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 씨를 수 차례 만났으며, 최 씨의 도움으로 대사에 임명됐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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