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두려운 ‘수면 무호흡증’…사상 첫 치료제 나오나
비만치료제 티르제파타이드 투여하니
1년 뒤 절반이 증상 완화 기준 넘어서
잠을 자는 도중 호흡 정지 현상이 나타나는 수면 무호흡증은 돌연사 위험을 높이는 주요한 원인 증상 가운데 하나다.
비만 등으로 인해 목 안의 공간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질환으로 보통 코골이를 동반한다. 증상이 심하면 혈중 산소 수치 저하로 고혈압,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 등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고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9억3600만명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수면 호흡장애를 겪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 약물은 없다. 현재로선 양압기(PAP)를 이용해 수면 중 공기를 지속적으로 기도로 공급해 주는 방법이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다.
그런데 최근 비만치료제로 쓰이는 약물이 수면 무호흡증에도 뚜렷한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사상 첫 수면 무호흡증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연구진은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OSA)이 있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체코, 브라질, 멕시코, 중국, 일본, 대만 9개국 469명을 대상으로 한 티르제파타이드 약물 요법을 시행한 결과 수면의 질이 크게 좋아진 임상시험 결과를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발표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제약 대기업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제2형 당뇨병 및 비만치료제로, 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와 또 다른 장 호르몬인 GIP 유사체를 결합한 것이다. 상품명은 마운자로(당뇨병 치료제), 젭바운드(비만 치료제)다.
4~5명에 1명꼴 위장장애 부작용도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모두 중등도에서 중증의 수면 무호흡증에 시달리고 있는 비만인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엔 10㎎ 또는 15㎎의 티르제파타이드를 투여하고, 다른 그룹엔 위약을 투여했다. 주 1회 복부나 허벅지 또는 팔뚝에 피하주사를 놓았으며, 주사 부위는 매번 바꿔줬다. 투여량은 2.5㎎으로 시작해 최대 용량에 도달할 때까지 4주마다 2.5㎎씩 늘려갔다.
1년(52주) 뒤 약물 효과를 측정한 결과, 약물을 투여받은 사람들의 수면 중 호흡 중단 횟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양압기 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된 사람도 있었다. 다만 일부 환자는 위장 장애 부작용을 경험했다. 4~5명 중 1명 비율로 설사, 메스꺼움, 구토 증상을 보였다.
양압기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제1 임상시험에선 호흡 중단 횟수가 시간당 평균 51.5회에서 26.2회로 25.3회가 줄었다. 양압기 치료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제2 임상시험에선 49.5회에서 20.2회로, 절반이 넘는 29.3회가 줄었다. 반면 위약 그룹에선 각각 5.3회, 5.5회 감소하는 데 그쳤다. 시험 참가자들의 평균 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는 각각 39.1, 38.7이었다.
연구를 지원한 일라이릴리는 최고 용량의 티르제파타이드를 투여받은 참가자의 43.0%(제1 임상시험), 51.5%(제2 임상시험)가 증상 완화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증상 완화’란 시간당 5건 미만의 무호흡-저호흡지수(AHI), 또는 시간당 5~14건의 무호흡-저호흡지수(AHI) 및 엡워스졸림척도(ESS=Epworth Sleepiness Scale) 점수 10 이하를 말한다. ‘엡워스 졸림척도’는 주간 졸림 증상의 정도를 평가하는 설문조사다.
티르제파타이드 투여자들은 또 위약 그룹과 비교해 수축기 혈압, 염증 표지자인 C반응성 단백질 등의 평가지표에서도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일라이릴리, 치료제 승인 신청…연내 판가름 날 수도
연구를 이끈 아툴 말호트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호흡기 및 대사 합병증을 모두 해결하는 유망한 치료법을 제시함으로써 수면 무호흡증 치료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수면 무호흡증은 주로 비만인 사람에게 더 잘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 체중을 감소시키는 비만치료제가 수면 무호흡증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다.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티르제파타이드의 장기적 효능을 평가하기 위한 또 다른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일라이릴리는 이번 임상3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티르제파타이드를 중등도~중증의 수면 무호흡증 치료제 승인 신청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회사 쪽은 식품의약국이 비만 환자의 중등도-중증 수면 무호흡증 치료제를 신속 심사 대상으로 지정한 점을 들어, 이르면 올해 말 승인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했다.
*논문 정보
DOI: 10.1056/NEJMoa2404881
Tirzepatide for the Treatment of Obstructive Sleep Apnea and Obesity.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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