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르던 조나단 이젠 친구들 가르치는 골목 선생님 됐어요
낮엔 엄마 없는 집에 우두커니
흙·벌레 주워 먹다 배앓이 일쑤
르완다 3명 중 1명만 취학전 교육
초록우산, 영유아센터 8곳 설립
독서·영어 등 무료 교육 서비스
부모 대상 영양·위생수업도 진행
은고마주=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무리심웨, 아바나?” “예고!”
르완다 은고마주 비타레 영유아센터(ECD Center·Early Childhood Development Center) 부지를 가득 채운 아이들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교사 세 명이 잔디밭에 동그랗게 선 111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서서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니, 얘들아?”라고 묻자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춤을 추며 “네!” 하고 외쳤다. 지난 13일 찾은 비타레 영유아센터에서는 노란색 반팔 셔츠에 초록색 하의 차림의 교복을 입은 4∼6세 아이들이 오전 8시 40분부터 아침 체조를 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9시 10분까지 이어진 오전 조회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은 아보카도 등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벽면이 꾸며진 건물에 들어서더니 나이에 따라 세 개 교실로 이동했다.
3∼4세 반에는 37명의 아이들이 세 명씩 조를 이룬 뒤 나무로 된 육각형 책상에 둘러앉아 첫 수업으로 키냐르완다어를 배웠다. 선생님이 키냐르완다어로 “나는 숫자 세는 걸 좋아해요.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앳된 목소리로 따라 하면서 문장을 익혀갔다. 벽면에는 교사가 손수 그린 각종 동물, 숫자 포스터가 가득했고 찬장에는 페트병과 병뚜껑 등 재활용품으로 만든 교구와 장난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4∼5세 반에서는 아이들이 교실 바로 옆 작은 공터에서 자연 탐구 수업을 받으며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르완다는 6월부터 세 달간의 건기에 진입했는데, “물이 적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앞에 물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주변을 뛰는 게임도 하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비타레 영유아센터에서는 이처럼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에게 숫자 세기, 책 읽기, 체육 활동, 영어 말하기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부모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오전 간식 시간에 아이들에게 영양죽을 주기 위한 간단한 식재료 등이 전부다.
은고마주처럼 르완다 내에서도 지역 주민의 소득수준이 낮고 영유아 교육지원시설이나 체계가 열악한 지역에서 영유아센터는 4∼6세 아이들의 발달을 도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육적 수단이다. 은고마주에서 적절한 돌봄과 양육을 받지 못해 발달지연을 보이는 5세 미만 아동이 세 명 중 한 명(33%)에 달할 정도다.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는 1000명당 50명으로 르완다 평균(39명)을 웃돈다. 가정과 지역사회의 교육·돌봄 공백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영유아센터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한 글자나 숫자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역사회 수요에 비해 영유아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영유아센터는 정부 허가를 받아야 설립, 운영할 수 있지만 의무 교육 기관은 아니어서 수가 적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르완다 정부는 행정구역인 셀마다 최소기준을 갖춘 1개의 영유아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는 목표치를 세웠는데, 64개 셀이 있는 은고마주에 설치된 센터는 6곳에 불과하다.
은고마주 가산다섹터 셀와셀 가코 마을에 사는 무지카 조나단(5). 진흙과 돌, 나뭇가지를 섞어 만든 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위태롭게 세워진 집에서 태어난 조나단은 세 살이 될 때까지 간단한 단어조차 말하지 못했다. 매일 엄마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아홉 살 차이 나는 누나와 시간을 보냈을 뿐 나이에 맞는 지적, 사회적 자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2일 방문한 집에는 아이를 위한 헝겊책이나 작은 장난감조차 없었다. 때로 보다 못한 엄마가 조나단을 데리고 밭으로 가면, 근처에 홀로 앉아 흙이나 벌레 등을 주워 먹은 탓에 늘 복통을 달고 살았다. 엄마인 무카마짐파카 로진은 남편이 숨진 후 홀로 일하며 양육까지 도맡았고, 자신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한 탓에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조나단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은 네 살이 되던 지난해 영유아센터에 다니면서부터다. 지역 봉사단체의 권유로 집에서 1㎞가량 떨어진 비타레 영유아센터에 다니게 된 조나단은 더 이상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길거리나 이웃집을 떠돌지 않는다. 이날 만난 조나단은 영유아센터에서 배운 것이라며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원리를 설명한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영유아센터에서 배운 노래와 게임, 글자들을 동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골목대장 노릇도 하는 중이다. 로진은 “조나단은 영유아센터가 개소하자마자 선착순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며 “마을 아이들 9명 중 영유아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은 2명에 불과한데, 몇 개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단 일부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르완다 정부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4%인 191만3732명이 5세 미만 아동이지만 이들 세 명 중 한 명만 취학 전 교육을 받고 있다. 르완다에서 영유아기 아동이 영유아센터에서 교육받는 비율은 31.9%(142만5212명 중 45만4594명)다. 아프리카 국가 평균의 취학 전 아동 교육 비율이 59%인 데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친다. 영유아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제공할 수 있는 영유아센터 기관이 많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영유아기가 개인의 사회성과 사고력 발달에 결정적 시기로 꼽힌다는 점에서 르완다 정부도 4∼6세 아동의 교육을 담당하는 영유아센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30년 전 제노사이드의 아픔을 딛고 국가를 재건 중인 르완다 정부는 쏟아지는 지역의 사회서비스 제공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 교육 예산 중에서도 영유아 교육을 위해 0.6%만이 편성돼 있어 영유아센터의 양적 확장이 쉽지 않다.
르완다 정부의 빈자리를 초록우산을 비롯한 국제 아동구호단체들이 채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8일 주청사에서 만난 심펜즈웨 파스칼(50) 냐비후주 사회부시장은 “정해진 정부 예산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 단체들로부터 영유아센터 건립이나 커리큘럼, 교사 재교육 등에 대한 지원을 받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부터 르완다에서 영유아 지원사업을 벌여 온 초록우산은 현재까지 8개의 영유아센터를 세워 4∼6세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가사보주 5개, 은고마주 2개, 냐비후주 1개가 초록우산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이 중 가사보주에 설립한 영유아센터는 운영에 대한 비용을 르완다 정부가 부담하도록 이양한 상태이며, 은고마주와 냐비후주의 영유아센터에서는 아직 교사 월급 등을 초록우산이 부담하고 있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초기 단계에서 도움을 주지만 점차 정부와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 궁극적으로는 이를 르완다에 이양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초록우산은 아프리카 5개년 전략에 따라 2027년까지 은고마주에 5개, 냐비후주에 2개의 영유아센터를 신축할 계획이다. 초록우산이 2027년 총 15개의 영유아센터와 250개의 가정어린이집을 설립할 경우 매년 1만여 명의 르완다 아동이 영유아교육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유아센터의 기능과 역할은 비단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냐비후주에 위치한 바슘바 영유아센터는 부모를 대상으로 아동권리 교육과 영양, 위생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등 가정과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18일 방문한 센터에서는 지역 신생아들을 위한 신체 계측이 한창이었다. 아이의 키와 몸무게, 팔뚝 둘레 등을 측정해 아이의 영양 상태를 파악하고 부모들이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바슘바 영유아센터는 마을 금융협동조합(VSLAs·Village Savings and Loan Associations)도 만들었다. 은행에 정식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주민들도 마을 협동조합을 이용해 공동으로 저축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8일 냐비후주 기타치니뇨니 마을에서 만난 ‘싱글맘’에피파네 무카무게나(27)는 영유아센터의 추가 설립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난해 5세 자녀를 영유아센터에 등록하려 했지만 수용 인원이 다 차서 보내지 못했다. 무카무게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의 집안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 아이들에게 숫자나 글자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일용직인 무카무게나가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가족 모두 굶기 일쑤여서, 매일 하루에 한 번 영양죽을 제공하는 영유아센터에 다니게 되면 아이들이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거라고 기대 중이다. 이날 지역 봉사단체 관계자가 무카무게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을 영유아센터부터 보내서 대학까지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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