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통령, ‘유혈 사태’ 부른 증세법안에 거부권···“국민 목소리 들을 것”
계란 등 기본식료품 인상으로 민심 악화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전국적인 반대 시위와 유혈 사태를 촉발한 증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2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그간 루토 대통령은 증세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으나, 전날 청년들의 전국적인 반대 시위가 격화하며 유혈 사태까지 이어지자 물러선 것이다.
루토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케냐 국민의 커다란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면서 “나는 ‘재정법안 2024’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법안은) 이후 철회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세금 인상이 아닌 지출 감축으로, 당장 대통령실부터 앞장서겠다”라며 “의회와 법원, 지방정부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재정법안은 루토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는 이유를 담은 각서와 함께 의회로 송부되고, 의회에서 철회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폐기된다.
전날 의회에서 가결된 이 법안은 27억달러(약 3조7000억원)의 세금을 추가 인상하는 대규모 증세를 골자로 한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차관을 받기 위해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이 법안을 마련했다. 케냐는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70%에 해당하는 약 10조실링(약 108조원)에 달해 이자에만 세수의 37%를 써야 할 만큼 재정 적자가 심각하다.
당초 지난달 정부가 의회에 증세 법안을 제출할 때 포함돼 있었던 빵에 대한 16%의 부가가치세를 비롯해 식물성 기름 소비세, 2.5% 자동차세, 현지 생산제품에 대한 환경 부담금 등은 여론의 반대로 제외됐다. 그러나 이런 수정안으로 세수가 2000억실링(약 2조2000억원) 감소할 것이란 재무부 경고가 나오자 계란을 비롯한 기본 식료품과 전화·인터넷 사용료 인상은 제외하지 않았다. 여기에 연료 가격 및 수출세 인상 등이 추가되며 격한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전날 케냐 전역에서 청년층이 주도한 시위는 경찰 발포로 최소 23명이 사망하고 30명이 총상을 입는 등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케냐의사협회는 경찰 발포로 숨진 이들이 최소 23명이라고 밝혔으나, 루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망자가 6명이라고 밝혔다. 루토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한 전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반역적인 안보 위협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법안 폐기를 주장해온 시위대는 대통령의 법안 철회 발표에도 “희생자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며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목요일에 만나요’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섞은 해시태그(#tutanethursday)를 올리며 27일 전국적인 평화 행진을 예고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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