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10여년 함께 한 골프화를 보내며

방민준 2024. 6. 2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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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넘게 신은 골프화가 드디어 명을 다했다.

내가 골프의 밀림을 헤매며 별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한 이 골프화가 몇 달 전부터 바닥 여기저기 금이 가더니 며칠 전 완전히 내장을 드러냈다.

지진이 난 듯 갈라져 속이 드러난 골프화 바닥을 대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저릿한 아픔이 전해졌다.

그렇게라도 골프화에 감사한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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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골프한국] 15년 넘게 신은 골프화가 드디어 명을 다했다. 꽤 비싼 가격에 구입한 'F'사 제품으로 라운드 때마다 애용하다 가죽 외피 색깔이 바래 2년 전부터 연습장에서만 신었다. 



 



내가 골프의 밀림을 헤매며 별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한 이 골프화가 몇 달 전부터 바닥 여기저기 금이 가더니 며칠 전 완전히 내장을 드러냈다.



 



질 좋은 가죽인 데다 워낙 꼼꼼하게 바느질이 되어 낡기는 했으되 부서지지는 않아 그런대로 신을 만했으나 합성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바닥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더니 금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결국 신발 바닥창이 조각나는 상태에 이르렀다. 외피 가죽은 색이 바래고 잔주름이 생겼지만 쓸만했으나 신발 바닥이 부서지니 더 이상 신을 수 없었다.



 



지진이 난 듯 갈라져 속이 드러난 골프화 바닥을 대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저릿한 아픔이 전해졌다. 평소 교감하던 애완동물이 숨을 멈추고 늘어진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골프화를 신발주머니 위에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라도 골프화에 감사한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 골프화는 추모의 마음을 갖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60여 kg의 무게를 싣고, 스윙 때마다 욕심에 찬 몸동작을 견뎌내며 나의 길고도 갈피 잡을 수 없는 골프 밀림 탐험의 동반자로 헌신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가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의 비행을 소문내는 바람에 받은 형벌(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꼭대기에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노역)을 답습하듯 골프의 신기루를 좇아 헤매는 나의 골프 여정에 함께 하며 만신창이가 된 골프화의 모습에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약과 추락을 되풀이했던 담금질 시대, 화려했던 싱글의 시대와 이어진 언더파와 에이지 슛의 기쁨도 이 신발이 만들어 주었다.



 



말년에 싱그러운 잔디를 밟지 못하고 연습장의 합성고무 매트 위로 밀려났지만 하루에 4박스를 날려대는 내 연습 중독의 노예가 되어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견디다 결국 명을 다한 것이다. 이 골프화는 내 인생의 상당 부분에서 나를 지탱해 준 기둥 역할을 해준 기념물이었다.



 



골프화를 태우는 쓰레기 봉지에 담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내놓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분리수거장을 떠날 때 장례식장 화장장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오호 애재(哀哉)라!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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