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지우기 나선 KT 김영섭호… “돈 안되는 사업 정리, AI 시대 돌파구는 못 찾아”
김영섭 사장, 취임 초기 디지털전환 전문가로 기대 한몸에
5G 시장 이미 성숙기… AI 등 신사업서 아직 제대로 된 성과 없어
“그룹 내 자회사가 많고 유기적인 협력도 부족한 것 같다. 많은 토의를 통해 거버넌스 개선이나 중복 사업을 재배치하고 정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김영섭 KT 사장, 2024년 5월 10일)
지난해 8월 KT 대표이사에 취임한 김영섭 사장은 LG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인 LG CNS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디지털전환(DX)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KT 주주들 사이에선 김 사장이 인공지능 전환(AX) 시대 ‘통신 공룡’ KT를 변신시킬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취임 후 10개월이 넘도록 구현모 전 사장 시절 추진했던 사업들을 정리하는데 주력할 뿐, AI 관련 신사업이나 탈통신 분야에서 뚜렷한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구현모 전 CEO 시절 추진했던 사업 대부분 정리
27일 업계에 따르면 KT는 올 들어 구 전 사장 시절 추진했던 국내외 사업들을 중단하거나 정리하고 있다. 이른바 ‘구현모 지우기’다. KT는 지난해 2월 몽골 몬니스그룹과 업무협약을 맺고 추진해왔던 희토류 국내 공급 사업을 최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몽골에 있는 희토류의 구성 성분상 경제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몽골에서 희토류를 확보한다고 해도 육로로 전달할 수 없어 운송비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KT는 디지털 물류 서비스 기업인 롤랩 지분도 지난 3월 전량 매각했다. 구 전 사장 시절 클라우드·빅데이터·AI 기술과 모빌리티 역량을 결집해 디지털 물류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로 시작됐던 서비스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은 1720억원 수준으로 당초 목표로 내세웠던 2025년 5000억 매출 달성에 미치지 못했다.
KT는 올해 초 베트남 헬스케어 사업도 전면 중단했다. 당초 KT는 현지 의료법인 ‘KT 헬스케어’ 비나를 설립하고, 올 상반기 내 하노이에 3300㎡ 규모의 건강검진센터를 지을 계획이었다. 지난 3월에는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 ‘민클’ 서비스도 종료했다.
한영도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미래 사업은 최소 10년 이후 장기적인 안목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추진하는건데, 당장 이익이 안 난다는 이유로 모두 정리하는 건 다소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주가 올해 초 반짝 상승… “기대 컸는데 아직 돌파구 못 찾아”
KT 주가는 올 2월 4만2000원대까지 올랐지만 이달 26일 기준 3만7200원에 머무르고 있다. 김 사장 취임 당시인 지난해 8월 30일(3만3050원) 대비 약 12% 상승하는데 그쳤다. 전임 CEO였던 구 전 사장 취임 후 1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KT 주가는 22% 이상 올랐다.
한영도 교수는 “올해 초 KT 주가가 상승세였던 것은 기존 수익 구조 영향이며, CEO 공석이었던 KT가 안정화되는 단계일 뿐”이라며 “김 사장의 영향력이 주가에 작용했을 가능성은 작다. 최근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한 것은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증권가에선 올 2분기 KT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한자릿수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5G(5세대 이동통신)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KT가 아직 AI와 관련해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주가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KT 주주들은 네이버 증권 등 커뮤니티에서 “AI로 인한 주가 상승을 기대했는데, 쉽게 오르지 않아 아쉽다”라고 했다.
KT는 이달 마이크로소프트(MS)와 AI·클라우드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자체 AI인 ‘믿음’만으로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력의 목적이 인재 양성에 집중돼 있는 만큼 당장의 수익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KT는 최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엡실론에 약 58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취임한 후 가장 큰 규모의 외부 투자다. 엡실론은 영국, 미국, 불가리아 등 41개국에 네트워크 거점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엡실론은 순손실 규모가 2021년 64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249억원까지 불어났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아직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비해 AI 사업과 관련해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KT의 경우 김 사장이 가지고 있는 사업경험에 기대가 컸던 만큼 1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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