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동맹’ 부활해서 금투세법 폐지할까

이종태 기자 2024. 6. 2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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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소득세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징벌적 과세로 주식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주장과 달리 금투세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윤석열 정부가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한 지난 1월17일, 한 시민이 서울 한국거래소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정부지출 확대 없는 경기부양을 꿈꾼다. 윤 대통령은 경제주체들을 세금 부담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자유’는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기업과 부동산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조치가 이미 시행되었거나 진행 중이지만 노동자의 근로소득세 인하가 주요 정책 방향으로 떠오른 적은 없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자유에 대한 임박한 위협을 새로 발견했다. 그동안 대다수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얻은 수익(주식 양도소득 혹은 주식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자유를 누려왔다. 그런데 내년(2025년)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법은 모든 투자자들의 주식 양도소득세 납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유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윤 대통령은 이 법 폐지를 공언했다. 이로 인한 세수 부족이나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대책까지 내놓진 않았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그랬듯이.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절친한 후배로 알려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월 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관련 간담회에서 금투세를 (자본시장에 해로운) 폐수에 비유했다. 금투세는 이른바 ‘좌파’가 한국 경제를 망치기 위해 급조한 악독한 법률일까?

한국 증시가 출범한 1950년대 중반부터 40여 년 동안에는 ‘주식 양도소득에 과세해야 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저발전 상태였기 때문에 주식 매각으로 수익을 챙기는 행위 자체가 드물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주식시장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역대 정부들은 주식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를 서서히 확대해왔다. 진보 성향 정부는 물론이고 보수 성향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근대적 세제 원칙을 차치하더라도, 주식시장이 발전한 거의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식양도세를 보편적으로 징수하고 있는 데다 세수 확보의 필요성도 날로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금투세 납부세액은 어떻게 결정될까

2000년대 초반에는 종목당 ‘100억원 이상의 주식 보유자’만 주식 양도소득세(주식양도세)를 냈다. ‘주식 부자’로부터만 양도세를 거둔 것이다. 이를 ‘대주주 기준(적절한 명칭은 아니다)’이라고 부른다. 2010년대 들어 ‘대주주 기준’은 50억원→25억원→15억원→10억원으로 계속 내려갔다. 그만큼 주식양도세 납부자가 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특정 종목의 주식을 100억원 이상 보유해야 주식양도세를 냈지만, 2023년에는 10억원 상당만 갖고 있어도 납부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보유 주식의 가치가 10억원이든 100억원이든 시중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부유층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 ‘대주주 기준’이 0원까지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투자자들이 주식 보유량에 상관없이 주식을 팔아 수익을 얻었다면 주식양도세를 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12월, 여야 합의로 비교적 순조롭게 가결된 ‘금융투자소득세법(금투세법)’의 골자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10억원 이상’이던 ‘대주주 기준’을 2021년에 ‘3억원 이상’으로 내린 뒤 2023년부터 금투세법 본격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여기서 ‘3억원 이상’은 ‘0원 이상(금투세법)’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였다. 갑작스러운 세제 변경에 따른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이후 금투세의 운명에 그늘을 드리우게 된다.

세금이란 무릇 특정 소득을 겨냥하기 마련이다. 근로소득세는 노동자의 소득, 법인세는 기업의 소득(수익), 부동산세는 주택 매매자의 소득(매각 대금)에 부과된다. 금융 부문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다양한 상품이 있는데, 현행 제도에선 각 상품에서 얻는 소득에 대한 분류와 세율이 모두 다르다. 그만큼 세정이 복잡해지고 조세 형평성에 대한 시비도 많다.

이에 비해 금투세법은 ‘금융투자소득’이라는 이름 밑에 다음과 같은 소득을 포괄한다. 첫째, 주식·채권·펀드 등을 남에게 팔고 얻은 소득. 둘째, 펀드를 환매(투자자가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매입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그 펀드를 다시 운용사에 팔아 수익이나 손실을 얻는 행위)해서 얻은 수익. 셋째, 파생상품 거래 및 파생결합증권(ELS, DLS)으로부터 발생한 손익.

이로써 주식은 물론 채권과 펀드 등 대다수 투자자들에게 사실상 면세되던 금융상품의 양도소득이 과세 대상으로 편입되었다. 투자자의 주식 보유량에 상관없이 금융투자소득에 일률적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금투세의 대표적 특징이다. 금융투자 관련 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가 얼마나 형평성 있고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는지는 해당 국가 자본시장에 대한 해외투자자 및 기관들의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금투세 납부세액은 어떻게 결정될까. 납세자들은 금투세의 각 소득 부문(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에서 거둔 손익을 합산한다. 이 합산액에서 기본공제를 뺀 금액이 ‘과세표준’이 된다.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하면 납부세액이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의 과세표준이 1년에 3억원 이하인 경우, 세율은 20%다. 연간 3억원 이상이면 그 초과분에 대해 세율 25%가 적용된다. 과세표준이 4억원이라고 치면 3억원에 대해서는 20%인 6000만원, 초과분인 1억원에는 2500만원(25%)이 부과된다. 납부세액은 모두 8500만원이다.

이제껏 대다수 투자자들은 ‘금융상품 매각 대금엔 비과세가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해왔다. 그래서 금투세의 세율을 대단히 높다고 느낄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라면, ‘4억원을 벌어 8500만원을 세금으로 내다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로 4억원을 벌려면, 연 수익률을 10%로 후하게 가정하더라도, 4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연 수익률이 5%라면 80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 정도 자금력을 가진 투자자는 흔치 않다. 물론 자신이 미래에 금융투자수익 4억원을 올릴 것으로 확신한다면 금투세에 반대할 이유가 충분할 수도 있다.

더욱이 금투세는 기본공제 규모가 상당히 크다. 국내 상장주식(과 이 상품들로 구성된 공모펀드)의 기본공제는 연 5000만원(다른 투자상품은 250만원)에 달한다. 1년 동안 주식거래로 순수익 5000만원을 내는 경우, 여기에서 5000만원을 공제하면 과세표준이 0원이므로 납부세액 역시 0원이다. 연 수익률이 10%인 경우 5억원, 5%인 경우 10억원을 조달할 수 있는 투자자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또한 금투세는 이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은, 친(親)투자자적 장치도 갖고 있다. 수익을 내지 못했는데 세금은 내야 하는 불합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다 보면 어떤 부문(예컨대 주식)에선 이익을, 다른 부문(펀드)에선 손실을 낼 수 있다. 이익보다 손실이 커도, 수익을 낸 부문에 대해서는 세금이 붙는다. 금투세에서는 각 부문의 손익을 합산하여 과세 여부를 결정한다. 손실이라면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 이를 ‘손익 통산’이라고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17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손실 이월공제’도 금투세를 통해 도입한 제도다. 특정 연도의 손실을 다음 연도로 ‘이월’시켜 ‘공제’받을 수 있다. 2025년에 손실 5000만원을 냈는데, 그다음 해(2026년)엔 수익 5000만원(과세표준 기준)을 낸다고 가정하자. 현행 제도에서는 2025년에는 소득이 없는 만큼 면세되지만, 2026년에는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2025년의 손실을 다음 해로 넘겨(이월해) 공제하면, 2026년의 수익은 0원(5000만원-5000만원)으로 간주되어 납세의무가 사라진다. 금투세에 규정된 이월공제 기간은 무려 5년이다. 2025년의 손실을 2030년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부터 ‘최근’까지는, 금투세를 도입하는 대신 증권거래세율을 내린다는 정치·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었다. 실제로 2019년 국회에서 증권거래세율 인하가 의결되며 금투세 입안이 본궤도로 진입했다.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매각할 때, 손익에 상관없이, 무조건 내야 하는 세금이다. 세율은 2019년 현재 코스피 0.1%, 코스닥 0.3%다. 세율이 낮아 보이지만 부담은 크다. 수익이 아니라 매도 단가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세율은 2023년에 코스피 0%, 코스닥 0.15%로 내려갔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사실상 폐지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여당과 제1야당의 10억 동맹”

금투세를 시행하는 경우, 어느 정도 규모의 투자자가 실제로 이 세금을 납부하게 될까. 2021년 9월 신우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가 9개 증권사의 최대 10년에 걸친 개인투자자 거래 자료를 확보해 연구한 결과(‘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의 세수효과’)를 참조할 수 있다. 2014~2017년에 금투세(기본공제 5000만원, 거래세율 0.15%, 이월연도 5년 적용)가 시행되었다고 가정할 때 전체 주식투자자 중 금융투자소득세를 납부할 것으로 추정되는 비중은 2%(약 9만명)였다.

현재 금투세는 시행 6개월여를 남겨두고 폐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 금투세, 나아가 ‘금융상품의 양도소득에 대한 보편적 과세’에 대한 저항은 2020년에 싹을 틔웠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에 ‘대주주 기준’을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내린 뒤 2023년부터 금투세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었다. 이와 관련된 사회·정치적인 세력 연합(‘찬성 연대’)도 형성되어 있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 안지혜씨(공공정책 전공)가 쓴 ‘조세정책 변동의 정치적 동학(2023)’에 따르면, “2020년 연초만 해도 기획재정부는 청와대와 민주당, 금융위원회, 진보언론 등과 정책(대주주 기준 3억원 이상으로 하향) 시행에 대해 느슨한 찬성 연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3억원으로 기준 하향’에 반대하는 개인투자자 단체가 거센 저항에 나섰다. 이에 당시 야당(현재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가세(‘반대 연대’)해 여론을 뒤흔들면서 ‘찬성 연대’는 궤멸하고 만다. 2020년 8월 말에는 금융위원회, 그다음 달에는 민주당이 ‘주식양도세(대주주 기준) 3억원 이상 적용 방안 유예(안지혜씨에 따르면 사실상 철회)’로 입장을 바꾸면서 심지어 청와대를 압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당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를 “여당과 제1야당의 10억 동맹”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민주당 당사 앞에서 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3억원 방안’의 철회는 금투세 폐지의 신호탄이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 폐지(주식 대량 보유자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를 공약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금투세법 시행을 2023년에서 2025년으로 늦췄다. 지난해 말에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대폭 높였다. 지속적으로 주식 양도소득세 납부자를 확대하려 했던 역대 정부들의 시도를 거꾸로 뒤엎어버린 것이다.

금투세가 내년(2025년)부터 시행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올해 벽두부터 이를 둘러싼 싸움의 총포를 쏘아댔다. 지난 1월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라고 연설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서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금투세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라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주식양도세의 보편적 납부’ ‘손실 이월공제’ ‘손익 통산’ 등 금투세의 주요 내용은 거의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2020년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금투세를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국민의힘은 당론 1호 법안으로 ‘금투세 폐지’를 채택했다. 금투세 폐지를 요청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동의자 수가 6월12일 현재 6만명을 넘겼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금투세 공격에 나섰다.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금투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하는 ‘징벌적 과세’이고 ‘주식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유예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중도층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충분한 주식투자 재원 조달 능력을 가진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6월 중순 현재, 민주당은 금투세를 내년부터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월4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금투세는 이미 3년 전 입법이 결정됐고, 그대로 시행한다는 게 당론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 ‘상속세 일부 개편’ 등을 띄우며 국민의힘과 감세 경쟁에 뛰어든 민주당이 금투세 당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2020년에도 ‘대주주 기준 3억원으로 하향’ 당론을 과감하게 뒤엎은 적이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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