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세운 마천루처럼…'우리'도 중동서 기적을 쓴다
[편집자주] 해외 공항에서 우리나라의 은행 광고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해외 진출 지역마다 '맞춤형 현지화' 전략을 앞세운 금융회사들은 K금융의 영토를 넓혔다. 이제는 넓어진 영토에서 핀테크 기술 등을 앞세워 '디지털 금융 DNA'를 심고 있다. 국경을 넘어 미래로 향하는 K금융의 전략을 취재했다.
이재학 우리은행 두바이지점장이 중동 지역에서 도전하는 각오다. 두바이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이지만 국내 은행의 진출은 활발하지 않았다. 2014년에야 우리은행이 국내 은행 최초로 두바이 지점을 개설했다.
올해로 10살을 맞은 우리은행 두바이지점은 시작부터 기적이었다. 당시 작은 외국은행의 개점식에 셰이크 막툼 두바이 왕자를 비롯해 현지 금융당국 수장들이 참석했다. 셰이크 막툼 왕자는 현재 두바이 부총리이자 재무장관이다.
우리은행 두바이지점은 직원 2명으로 시작했다. 이 지점장이 2명 중 한명이다. 임경천 초대 지점장과 함께 컵, 숟가락 등 하나하나 사가며 사무실을 꾸몄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간 이 지점장은 우리금융지주 설립에 참여한 뒤 10년만에 다시 두바이지점장으로 돌아왔다.
현재 두바이지점엔 11명이 일한다. 한국 본사에서 온 4명과 현지 직원 7명이 한 팀을 이뤘다. 10년전보다 많이 늘었지만 같은 DIFC(두바이 국제금융센터) 건물에 있는 일본계 은행인 SMBC 직원수 120명에 비하면 한참 적다.
규모는 작지만 두바이지점의 성장세는 무섭다. 이 지점장은 "처음 개설할 때 자본금 성격으로 받은 게 200만달러였지만 현재 지점 규모가 12억달러 이상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글로벌 영토 확장에서 두바이지점이 갖는 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IMF 모로코 총회에 참석한 뒤 귀국하는 길에 두바이지점을 방문했다. 당시 임 회장은 이미 성숙한 미국·유럽과 한창 진출을 많이 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제외하면 다음의 신성장 시장은 중동과 동유럽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는 게 이 지점장의 설명이다.
이 지점장은 "중동에서 금융 중심지가 두바이로 이동한 지 한참 됐고, 여기서 모든 금융 관련 일이 이뤄지는 상황"이라며 "두바이가 명실상부한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서 계속 성장해갈 것이고 두바이지점의 역할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두바이지점의 영업방식은 크게 4가지다. 먼저 중동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이다. 이를 위해 우리은행 두바이지점은 현지 금융기관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뢰 관계가 있어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초청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제벨 알리'라는 중동 최대 물류 항구가 두바이에 있는 만큼 수출입금융도 비중이 크다. 현재 두바이지점 수출입금융 규모는 약 4억달러다. 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현지 금융기관이 주선하는 우량기업 대출에 참여하는 방식도 있다. 최근에는 중동 최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과 관련한 항공기 리스회사 딜에 참여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중동에서 한국 기업이 진행하는 건설 사업에 보증이나 자금 지원을 하는 사업 형태도 있다.
이 지점장은 "기업금융 중심이기에 현지 글로벌 금융기관과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량한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금융 수요를 발굴하는 식으로 현지 고객을 확보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지점의 최근 주요 관심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사업이다. 사우디 지역은 두바이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은행 바레인지점이 담당한다. 그러나 금융 중심지에 위치한 두바이지점을 빼놓고선 네옴시티 사업 대책을 논할 수 없다. 앞으로 두바이지점과 바레인지점이 공동으로 네옴시티 사업에 대응하겠다는 게 이 지점장의 계획이다.
이 지점장이 중동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파트너십'이다. 그는 "과거에는 한국 건설사가 가서 입찰하고, 공사하고 돈을 받아오는 구조가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같이 돈을 출자하고, 파트너십을 이뤄 사업을 같이 성장시켜 나가는 형태를 현지에서 많이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중동 지역 분쟁은 두바이지점이 가진 가장 큰 리스크다. 영업 확대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 분쟁이 두바이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고 이 지점장은 설명했다. 그는 "UAE 지역이 갖는 아이러니가 주변 분쟁이 많을수록 이곳은 혜택을 보는 것"이라며 "나라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치안도 좋아 사람이 더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사람이 많이 이주해와 두바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고 집값 폭등을 야기했다고 한다.
두바이 현지에서의 영업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K팝 등 문화의 영향으로 한국을 향한 선호도와 긍정적 인식이 높아져서다. 지난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관련 소식이 현지 매체 1면 톱을 장식하기도 했다. 한국 문화의 인기 덕분에 우리은행에서 근무하는 현지 직원의 만족도와 애사심도 높다. 두바이지점 현지 직원 중에는 최소 4년에서 10년까지 근무한 장기근속자가 많다.
이 지점장은 올해 우량 대출 자산 비중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3억달러 규모인 외화대출 규모를 연말까지 3억5000만~4억달러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수출입금융에선 만기 1년의 저마진 대출을 줄이고 장기·고마진 상품을 취급해 수입 구조를 안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2030년까지 글로벌 수익 비중을 25%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본점의 글로벌 전략에서 두바이지점의 기여도를 높이는 게 이 지점장의 장기적 목표다. 그는 "런던, 뉴욕 등 지점의 글로벌 수익 비중이 3~4% 정도 된다"며 "중동 지역이 갖는 향후 성장 잠재력을 봤을 땐 앞으로 이들 글로벌 국제금융센터 지점만큼 수익 비중이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바이(UAE)=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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