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허용한다’는 핵무장론…북-러 조약 뒤 또 나와도

박민희 기자 2024. 6.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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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오세훈 등 적극 주장해
트럼프 캠프 인사들 발언도 불씨
“외교실패 시선 돌리기” 지적 나와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양/타스 연합뉴스

지난 19일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 복원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한 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다시 분출하고 있다.

한국전쟁 74주년인 지난 25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이날 보수 성향 단체 ‘새로운미래준비위원회’ 세미나에 참석한 나경원 의원은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세미나에서 “오늘 5번째로 넘어온 오물 풍선을 보면서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 의원은 26일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이 당대표가 되면 ‘자체 핵무장’을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또하나의 ‘도화선’은 지난 21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낸 보고서다. ‘러북 정상회담 결과 평가 및 대 한반도 파급 영향’ 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북러 조약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맨 마지막 부분에 “(한국의) 자체 핵무장 또는 잠재적 핵능력 구비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 및 전략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구절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부각하면서 ‘핵 무장론’을 재점화했다. 조선일보는 25일 사설에 이 보고서를 인용한 뒤 “지금까지 국책 연구소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미국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독자 핵무장과 재처리 권한 확보까지 언급한 경우는 드물었다”며 “이제 한국 정부도 핵무장 논의를 더 이상 금기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핵무장, 현실성 있나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북러 밀착 등으로 한국의 안보 환경이 크게 악화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이다. 핵 개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다. NPT 10조 1항은 자국 안보에 비상사태 발생 시 3개월 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에 설명하고 탈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일 한국이 NPT 10조 1항을 근거로 탈퇴를 선언한다면, 한국을 제재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줄까. 미국은 한국의 핵을 용인하면, 일본,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터키 등에서도 NPT 탈퇴와 ‘핵 도미노’가 일어날 것을 우려할 것이고, 한국은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전 오사카 총영사)는 “한국이 핵무장을 위해 NPT를 탈퇴하면 유엔 안보리 경제 제재를 받게된다.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은 버티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은 전력 생산의 2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데, 핵공급그룹(NSG)으로부터 핵연료(MOX) 공급이 중단돼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말한다.

더구나, 미국의 동의나 묵인이 없는 핵 개발이 한미 동맹의 파탄을 초래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반도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대신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한국이 핵무장을 거론하는 것을 차단했다. 북러 조약 이후 한국 핵무장론이 다시 분출하자,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24일(현지시각)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한반도에서 핵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워싱턴 선언’ 외에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워싱턴 선언이) 우리가 지금 대응하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의 핵무장론에 반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2023년 4월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서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해 미국이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대신 한국의 핵무장 논의를 차단했다. 워싱턴/윤운식 기자

트럼프 재선하면 한국 핵무장 용인할까

핵무장론의 또다른 배경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다. 트럼프 재선 시 주한미군 감축,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이 예상되니, 한국도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가 현실이 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를 비롯해 트럼프 캠프 인사들의 잇따르는 ‘한국 핵무장 용인’ 시사 발언이 한국 핵무장론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한반도 정책 실무 담당자였던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21일 “우리는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으며 어쩌면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 선임 연구원도 21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며 “좋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을 북한의 (핵) 능력의 인질로 잡아두는 것은 훨씬 더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되었을 때 이들이 실제로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한국핵정책학회 회장)는 “지금 트럼프 캠프 안에서 경쟁하고 있는 이들 인사들은 한국인들의 관심에 맞춰 립서비스용 발언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정부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될 때 한국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미국 외교안보의 주류에서 핵비확산 원칙이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더그 밴도를 비롯해 한국 핵무장 가능성을 시사하는 이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람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잠재적 핵능력’과 한-일의 차이

이런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일단은 일본처럼 ‘잠재적 핵능력’을 확보하자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핵전력을 활용한 안보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NPT를 탈퇴할 경우 제재 등을 고려해 일단 “핵무장의 잠재적 역량을 갖추는 데까지는 가자”고 주장했다. 송민순 전 외교장관도 잠재적 핵능력 보유를 주장한다.

일본은 1988년 발효된 미일 원자력협정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고, 20% 미만까지 저농축이 가능하다. 유사시 이를 활용해 단기간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일본처럼 ‘잠재적 핵능력’을 확보하려 해도, 2035년에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리 개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조성렬 교수는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할 때 박근혜 정부가 미국에 계속 재처리 기술 허용을 요구했다. 나중에는 파이로프로세싱이라도 허용해달라고 했지만 미국은 그것도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의 우라늄 등을 회수해 차세대 원자로의 핵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인데, 미국은 이것도 결국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한국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일본 롯카쇼무라 핵재처리 공장. NHK 화면 캡처

보수층 결집용 무책임한 핵무장론, 오히려 안보 위협”

그렇다면, 이렇게 현실적으로 자체 핵무장은 물론 잠재적 핵능력 보유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왜 핵보유론이 다시 분출했을까. 정부가 러시아와의 외교를 방치해 북러 조약이 체결된 외교실패에서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도록 하고,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보수층의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성렬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뒤 한-러 관계가 계속 악화되었는데도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계속 ‘한러 관계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잘 관리되고 있다’면서 한러관계를 방치해 왔다”면서 “이제 북러가 조약을 맺자 당황한 보수 세력이 논의의 초점을 핵무장으로 바꾸고 있다”고 짚었다.

정치권의 핵무장론은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을 하면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워싱턴 선언’을 맺은 뒤, 정부는 그 결과물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핵우산 강화 방안을 논의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실제로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 했다면,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함께 요구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해 핵무장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 큰 불이익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전봉근 교수는 “지금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나 핵연료용 농축 기술 등 한국이 미국과 첨단기술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한국에서 핵무장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미국은 한국의 의도에 불신을 가지게 되고, 첨단기술 협력에서도 한국을 소외시킬 우려가 커진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진지하게 한국의 안보 상황을 우려하고, 만일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핵무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대비하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확보한 이후에도 ‘핵 잠재력’ 언급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비핵 3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전봉근 교수는 “한국이 정말로 안보를 위해 핵 잠재력을 보유하려면,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를 해 명확한 전략을 만들어 ‘조용한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면서 “정치권에서 이렇게 핵 보유를 떠들수록 한 걸음도 나갈 수 없고 불리해진다”고 우려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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