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비용 더 들더라도 병원 변해야”
[4] 용인세브란스병원의 의료 실험
26일 오전 9시 경기 용인시 기흥구 용인세브란스병원 13층 병동. 각 병실 입구 화면엔 ‘환자 서○○, 교수 경태영·박윤수’처럼 환자 이름 옆에 교수 두 명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환자 한 명의 주치의가 전문의 두 명인 셈이다. 한 명은 환자를 처음 보고 진료·수술한 진료과 교수, 다른 한 명은 그 환자의 입원부터 퇴원까지 책임지고 전담하는 입원의학과 교수다.
“이 환자 오늘 상태 괜찮으면 내일 퇴원 준비하시죠.”(경태영 입원의학과 교수) “좋습니다.”(박윤수 감염내과 교수)
두 교수가 환자 상태에 관해 얘기하는 동안 옆에선 PA(진료 지원) 간호사가 차트에 내용을 받아 적었다. 경 교수는 “주치의들끼리 소통은 직접 만나서도 하고, 급할 땐 바로 문자나 전화를 하면서 환자 상태를 공유한다”며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교수 21명이 다른 진료과 교수 100여 명과 함께 이런 식으로 협업하며 꼼꼼히 환자들을 돌본다”고 했다.
2020년 문을 연 용인세브란스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전문의 중심 대학 병원’이다. 신생 병원이라 전공의인 레지던트 수는 17명밖에 안 된다. 그마저도 대부분 지난 2월 사직서를 내고 출근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4년간 잘 운영될 수 있었던 데는 이 병원 입원의학과 교수(입원 전담 전문의)들의 역할이 컸다.
‘입원 전담 전문의’는 전국에 320여 명 있다. 이들을 두고 있는 병원은 60여 곳 되지만, 용인세브란스병원은 대부분 병원과 달리 ‘입원의학과’를 별도 과로 만들었다. 또 소속 전문의들을 계약직이 아닌 임상 교수로 채용했다. 김은경 병원장은 “환자, 기존 교수뿐만 아니라 교육·수련에 집중해야 할 전공의들을 위해서도 ‘전문의 중심 병원’이 뉴노멀(new normal·새 표준)이라고 믿고, 병원 차원에서 힘을 실었던 것”이라고 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교수 21명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등 10개 진료과 전문의 자격증을 갖고 입원 환자 15~25명씩을 맡고 있다. 최초 진료·수술을 시행한 교수와 별도로 회진을 하고 입원 병동에서 계속 환자를 챙긴다. 환자 상태와 치료 계획은 기존 진료과 교수들과 수시로 상의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반긴다.
지난 18일 폐렴으로 입원한 85세 환자의 아들 김모(52)씨는 “주치의 교수님은 (외래) 진료도 따로 보시기 때문에 회진 때를 빼면 뵙기 쉽지 않다”며 “입원의학과 교수님이 계속 병동에 계시니 중간중간 처치가 필요할 때마다 말씀드리고 치료 경과도 여쭤볼 수 있어서 좋다. 주치의가 바로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2016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한 ‘입원 전담 전문의’ 제도 자체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환자단체연합회 조사에선 입원 전담 전문의의 치료를 경험한 환자 10명 중 8명(82.7%)이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또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입원 전담 전문의 제도 도입 후 ‘환자 재원 일수’와 ‘입원 1건당 비용’도 각각 0.36일, 9만717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용인세브란스병원처럼 성공적으로 정착한 경우는 드물다. 입원 전담 전문의가 그만두고 개원의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낮은 수가(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계약직 등으로 불안정한 지위, 교수·전공의 관계로 대표되는 병원 내 수직적·경직적 문화 때문이다. 경태영 교수는 “건보 수가로는 인건비의 절반 정도만 보전되는 수준”이라며 “나머지 인건비는 병원에서 부담하는 식이라 병원 부담이 만만찮다”고 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도 개원 초기엔 기존 진료과 교수들과 입원의학과 교수들이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입원의학과 설립을 주도했던 김수정 교수는 “병원 차원의 추진 의지, 기존 진료과 교수님들의 양보·배려가 컸다”고 했다. 김은경 병원장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수지만 따질 것이 아니라, 기존 교수들이 외래·수술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입원의학과가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에서 조용하지만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아직 적자를 보고 있지만, 매출·영업이익 모두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보다도 올해 더 나아졌다. 전문의 중심 병원인 만큼 전공의 이탈로 인한 타격이 적었다.
다만 입원의학과 교수들은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전공의가 많지 않은 전문의 중심 병원이지만, 우리 역할은 ‘전공의 대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입원의학과 교수들은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논문 작성, 간호사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을 담당한다. 전공의 교육까지 이들이 맡을 수 있다. 전공의는 교육·수련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전문의 중심 병원을 위해선 숙련된 PA 간호사는 물론 의료 인력의 부담을 덜어줄 스마트 병원 시스템도 필요하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중증 환자의 심전도·혈압 등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위험 징후가 뜨면 주치의들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IRS(통합반응상황실) 등도 갖추고 있다.
정부는 이미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대대적인 지원·투자 없이는 입원 전담 전문의 제도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지원 없인 값싼 전공의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신준재 신경외과 교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은 전공의 없는 병원이 아니라, 전공의가 ‘더 뛰어난 전문의’로 양성되도록 돕는 병원”이라며 “각 병원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고, 기존 전공의 의존도가 컸던 병원은 입원 전담 전문의도 대거 채용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했다.
김수정 교수는 “같은 의료비 지출로 두 명의 교수 주치의가 생길 순 없다”며 “정부뿐만 아니라 환자와 국민도 전문의 중심 의료가 그냥 주어지는 서비스가 아니라 ‘더 비싼’ 의료라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공의·전문의·전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치러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일반의’라고 한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레지던트를 거친 뒤 특정 분과에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대형 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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