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본 언론 업고 노조 '자제론' 선동하면 '일터의 민주주의'만 후퇴시킬 뿐이다
지난 3월 조선일보는 '12 대 88의 사회를 넘자'라는 제목으로 노동 현안에 대한 특집 기획기사들을 내놨다. 3월 5일부터 22일까지 36편의 기사가 게재됐다. 해당 기획은 '조선일보-전태일재단 공동기획'이라는 명의를 달고 있는데, 많은 이들은 노동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기억하고 이 과정에서 현재적 의의를 찾는 역할을 맡아야 할 전태일재단이 대체 왜 조선일보와 함께 이런 공동 기획을 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이는 결코 노동운동의 자기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조선일보가 노동 문제를 보도해온 지극히 편향적이고 친자본적인 포지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본고에서 나는 이 기획의 '명의'를 당연시하지 않으려 한다. 5월 17일에 게시된 전태일재단 성명에 따르면, 해당 기획은 전 사무총장 한석호가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추진"했다. 재단 측은 "그동안 한 전 총장의 독단적 행동과 비민주적 운영이 되풀이"됐으며, 2월 23일에서야 한석호 전 총장이 조선일보와 협업해 해당 보도를 기획하고 있음을 인지했다고 한다. 즉, 한 전 총장이 자신이 속한 단체 성원들의 동의 없이 단체 명의를 걸고 해당 기사를 기획한 것이다. 해당 성명에 따르면, 전태일재단은 첫 보도 이틀 후인 3월 7일 "(이 기획이) 재단 이사회에서 논의·결정한 사업이 아니"며, "최소한 재단 이사장이 확인하고 승인"하지 않은 사업임이 명시된 공문을 조선일보에 발송했다. 한 전 총장은 이 공문 발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이번 사안은 한석호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진 기행(奇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여정에서 이견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방향에 대한 논쟁을 건강하게 진행하려면 의사결정과정의 기본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현실 굴절 : 노동 불평등 원인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의 오류
주지하다시피 판매부수 1위 신문 조선일보는 어떤 노동 문제이건 평범한 노동자들의 시선을 통해 보도하지 않았고, 심각한 수준의 왜곡보도도 지속해왔다. 민주적 노동운동의 파괴가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라도 한 것처럼 노동조합 혹은 노동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절박한 몸부림들을 힐난하고 왜곡하는 펜대를 굴렸다. 가령 2014년 5월 조선일보는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중 삼성의 무노조 전략에 의해 탄압받다가 자결한 고 염호석 열사에 대해선 아무 보도도 하지 않았고, 경찰에 의한 시신 침탈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대해서도 단 한 글자도 보도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경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간부 시신 강제 탈취) 대신 조선일보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서초 사옥 앞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기사만 냈다. 2014년 5월 23일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마이크를 든 남성이 '투쟁'이라고 외치자 바닥에 앉아 있던 400여 명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직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입니다. '임금 인상'과 '삼성의 노조 탄압 중단'등을 요구하며 사옥 앞 2개 차선까지 점거한 채 19일부터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이 삼성 측의 일방적인 노조 탄압과 조합원들의 자결, 시신 탈취 등으로 인해 벌어진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조선일보는 자신의 악의적 보도들에 대해 아무런 사과와 반성도 하지 않았다. 2018년 9월 28일자 사설에서도 조선일보는 <민노총 강성 노조 있었다면 삼성·포스코 신화 가능했을까>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는데,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마저 부정하는 자칭 '1등 신문'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반노동 보도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사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악의적 선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을 지킬 역량이 있다. 반면, 노조라는 울타리가 없는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악선동에 더 크게 흔들린다. 노총들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오늘날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이런 악의적 선동 때문이다.
노동운동 안팎에서 조선일보의 이번 기획기사를 비판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이 기획의 의도가 기만적이고, 심지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의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고, 평범한 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조차 손쉽게 뭉갤 수 있다. 친자본·신자유주의 언론들은 착취받고 억압받는 이들의 집단적 저항을 왜곡함으로써, 기존의 지배적인 통념을 강화하고 수호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평소에 이들은 노동조합운동의 이미지를 '대기업·정규직 중심'으로 만드는데 열중하는 반면 지난 십수년동안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조합원 비율이 크게 상승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동시에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결집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헐뜯는 일에 집중한다. 건설 노동자나 택배 노동자들의 집회,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 이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복지나 빈곤의 문제를 각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여 금융자본에게 이윤 창출의 길을 열고, 노동조합을 공격함으로써 기업 권력을 강화하고, 개인간의 경쟁을 심화해 임금 상승 요인을 억압하고 자본이 보다 자유롭게 착취 전략을 구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전하고 확대하는 데 복무한다. 이런 의도를 외면한 채 '활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기만적이다.
둘째, 이 기획기사가 제시하는 '불평등 노조 책임론'은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 기획이 노동 현안을 인식하는 틀은 "전체 임금 근로자 중 12%인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 등 나머지 88%"를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에 기반한 대립적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위 0.1%, 상위 1%의 존재는 소거된다. 한종석 아주대 교수의 연구 '20년간 한국의 소득 불평등과 이동성'(2024)에 따르면, 지난 20년(2002~22년) 저소득층 소득이 65.9% 증가한데 비해, 중위소득 증가율은 약 17%, 상위 25%의 소득증가율은 약 12%였다. 이에 반해 상위 1%의 소득은 약 47%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중위소득과 상위 1%의 소득 비율(P99/P50)은 4.2배에서 5.3배로 악화됐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나 조선일보 같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이 결과에서 일부 사실만 취합해 "2005년부터 불평등 감소세가 뚜렷"하다고 자의적으로 결론내고, "헬조선 타령과 양극화 선동을 멈추라"고 역(逆)선동한다.
그러나 상위 1%의 소득증가율이 중위소득 증가율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을 보면, 양극화가 나아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다. 2005년부터 2022년 사이 법정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온 점, 최근 한국 사회 내 여러 불만들이 중상층의 불만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지난해 통계청에 발표한 '소득불균등도와 소득이동성의 변화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21년 사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증가한 것이 빈곤율 하락에 기여"하여, "총소득 지니계수는 소폭 감소"했고, 절대빈곤율(16.2% → 9.8%)과 상대빈곤율(14.2% → 11.5%) 모두 감소했다. 전체 소득분배구조를 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소득불균등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다가 2010년을 전후하여 안정화되는 듯하였으나, 2010년대 중반 분배격차가 다시 확대"되고 있으며, "총소득 단계의 소득불균등도는 하향 안정화" 추세에 있다. 즉, 한국경제신문의 해석이나 한석호의 해석 모두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결과적으로 한 전 사무총장 등이 보수언론들과 함께 내세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편의적인 체리피킹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감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오늘날 불안정 노동의 양산을 야기한 자본의 책임을 겨누지 않고, 대신 조직노동을 공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노동권연구소의 김철식 연구위원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념에 대해 "오늘날 노동시장 모순을 노동시장 내 노동자 간의 관계 문제로 축소한다"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분석대로 한국 노동시장은 "직접적 고용과 정규직 고용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단지 비정규직이나 중소하청기업 노동자로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노동형태가 등장하여 고용형식이 모호"해졌는데, '이중구조'란 개념은 "무수한 분할과 비가시적 노자관계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노동의 분할과 노동자-자본가 관계의 비가시화 속에 기업들은 노동에 대한 통제는 확장하고, 책임은 축소·회피할 수 있게 됐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지적했듯, 진짜 문제는 "노동자 전체를 불안정화해 분할 통치하는 기업과 불안정화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문제"에 있다.
무노조 노동자에게 더 나쁜 '이중구조론'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제도를 통해 집단적으로 단결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힘을 갖기 때문에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를 근거로 적지 않은 논자들은 무노조 비조합원 노동자의 저임금을 (노조 가입의 장벽을 높이는 제도나 사측이 아니라) 장벽을 뚫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조합 탓으로 돌린다. 한데 최근의 연구들(황선웅, 2017)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비조합원 평균 임금에 대해서도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가령 특정 지역 내 노조 조직률이 10%포인트 상승하면 같은 지역 비조합원 평균 임금은 4.94% 증가한다. 이러한 효과는 여성, 청년, 저학력, 비정규직, 서비스업, 중소기업 노동자 등에 폭넓게 파급된다. 반대로 노조 조직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지역들에서는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의 임금 격차(불평등)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따라서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의 확대를 결과론적으로만 해석해 '노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 현실과 다른 '왜곡'이다.
물론 이를 기업규모 수준으로 좁혀 분석한 유경준·강창희(2014)의 연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중·대규모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임금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만, 30인 미만 기업에서는 노조 조직 여부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노조 조직률의 상승을 높이려는 모든 운동적 시도(노조할 권리)는 노동자계급 내 평등을 회복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노조 바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조건에 있느냐에 따라 임금 효과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조의 임금효과는 기업이 일정한 경제적 지대를 취득할 때 나타날 수 있다. 재벌 대기업들은 수직계열화된 산업 구조에서 아웃소싱을 통해 불안정한 노동력을 활용하며, 원하청 불공정 거래에 의해 상대적으로 지대 확보의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웃소싱이 활발한 기업일수록 저임금이고, 노조의 임금 효과는 원하청구조에서 아래쪽에 위치할수록 작다. 따라서 이처럼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로 분할되고, 노동자계급 전반이 기존의 권리 보호로부터 벌거벗겨지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보다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소득분위상에서 가장 큰 임금 하락을 겪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게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되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에 있다.
우리는 노동의 분할이 단지 제도의 미비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가 임금 문제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노동을 둘러싼 모순들은 매우 다양하며,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들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사회운동 전반은 직무급제 관련 논쟁이나 관성적인 최저임금 투쟁, 장시간 중심의 노동시간 문제 등에 대해 일정한 혼돈을 경과했다.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자신들이 나서서 "금기를 넘어" 뭔가 대신해주겠다는 영웅주의적인 발상 대신, '몫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신장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익명의 헌신자들과 함께 그 실천에 함께 해야 한다.
파업에 대한 통치자들의 흔한 통념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노동자-자본가 간의 '산업평화'에 위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파업은 노동자 다수가 참여함으로써 힘을 갖고, 이 때문에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조는 파업 참여를 독려하고, 노동자들은 파업 참여를 통해 일터에서의 자율성과 동료들에 대한 연대, 투쟁의 효능감을 경험한다. 실제 동시기 노조 조직률 하락을 경험한 해외 사례들과 비교할 때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례들의 중요한 전술적 특징 중 하나는 파업 전술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왔다는 점이었다. 노동권을 지키거나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파업을 비롯한 실질적 쟁의의 비중이 감소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이나 정치권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노동조합에게는 조합원 참여나 주체성이 줄어드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조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의존적으로 만든다.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이 대기업-정규직 노조들이 아닌 보다 불안정한 노동자들에 의해 상징화되고 단결의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투적 노조주의가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친자본 언론을 등에 업어 허수아비를 때리며 노동조합을 향해 '쟁의 자제론'을 펼치는 선동은 일터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왕년에 운동 좀 한 지식인 대신 '대중'이 주역 돼야
한석호나 일부 1세대 운동가들이 자의적으로 주장하거나 잘못 짐작하는 것과 다르게, 한국 노조의 역사적 전투성은 이미 '조직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넘어갔다. 실제 현대차 노조 등 대기업 노조는 더 이상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 대신, 건설 노동자와 화물 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서비스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등 이제 막 조직화되고 집단적인 행동에 나선 불안정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전투적 노조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의도와는 다르게 조직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공격, 무노조 노동자들의 비관을 부추기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한 사회단체가 잘못 주장하듯, 노동조합이 기업의 생산성을 우려하며 이것의 대책까지 대신 짜줘야 한다면 노조 지도부는 중국의 어용 공회들이 그러하듯 노동 통제의 대리자 구실까지 해야 할 것이다. 망상으로 가득한 '붕괴론'에 기대어 노조 지도부가 자본의 생산성 하락을 우려해 노동력 통제의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다보면 노동해방의 주체를 조직해야 할 노동운동 자신의 장기적 비전과는 정반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선심이나 양보, 이들 정규직 노조를 탄압한 대가로 주어지는 작은 떡고물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 자신이 단결하고 싸울 수 있는 역량과 기회이다. 대기업·정규직 노조들은 자신의 역량을 모아 불안정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들의 투쟁을 조력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즉, 경기침체 시기에 노동조합이 할 일은 기업들의 이윤 보존을 위해 양보하고 임금을 동결·삭감하는 게 아니라,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에게로 노동권이 확장되고 이를 통해 풀뿌리로부터 사회적 안정망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을 하는 것에 있다. 이 과정에서 노총들은 초기업교섭 및 단협 효력의 확대를 위해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별 노동조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직무급제나 임금 동결이 아니라, 기업별 단체교섭의 조율이 무노조 기업에도 확산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 초기업적 노동기준(임금률)의 설정으로 기업을 넘어 산업이나 업종 수준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즉, 시장원리가 아닌 초기업적·사회적 제도가 노동시장을 규제함으로써, 노동체제를 개혁하고 노동권을 확장해야 한다. 이런 식의 초기업교섭 사례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미 여럿 있는데, 이 성취들을 상기하고 이것을 어떻게 전면화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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