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편견 걷어냈더니 선명한 재미가 도시 곳곳에
선사시대 유적부터 메타버스체험까지… 걸어서 시간여행하는 기분 낼 수 있어
무더위 피하고 싶다면 수밭골이 제격… 200살된 느티나무 밑에서 휴식을
먼 곳으로 떠나야만 여행인 건 아니다. 우리가 터를 잡고 살거나, 돈을 벌려고 경제활동을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는 곳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는 순간 매력적인 여행지로 바뀔 수 있다. 전체 면적의 5분의 1가량이 산업단지로 이뤄진 회색빛 굴뚝도시. 지역 전체 아파트의 25%인 15만여 가구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대구 대표 주거지역. 대구 사람들의 삶터이자 일터로 알려진 달서구 역시 수준급 여행지로 변신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달서구에서는 걷기만 해도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먼 옛날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이야기가 기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최근엔 산업도시답게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시공간을 초월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즐길 거리도 풍성히 마련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여름,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고 싶다면 숲으로 가면 된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탁 트인 짙푸른 녹음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해서, 몰라서 지나쳤던 달서구의 여행지를 누벼본다.
도심에서 만나는 2만 년 전 원시인
2006년 대규모 택지 개발이 한창이었던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대구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구석기부터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 등에 이르기까지 고루 분포한 유물 1만3000여 점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대구 지역 최초의 거주 인류가 구석기 시대인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을 줬다. 발견 이전까지 학계는 대구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점을 5000년 전으로 봤었다. 월성동 유물 발견 사건을 계기로 대구 역사는 순식간에 2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달서구가 2만 년 전에도 선조들에게 주거지역이자 공업도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달서구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은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과 몸돌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던 망칫돌, 몸돌로부터 떼어 낸 가공 돌, 긁개, 새기개 등이다. 달서구가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지였음을 확인시켜주는 흔적이다.
달서구는 선사시대 유적을 활용해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했다. 대천동 달서선사관에서 유천동 행정복지센터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선사시대 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원시인 조형물 10여 점이 자연스레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맨홀을 통해 과거에서 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어리둥절한 표정의 원시인부터 달서선사관 내부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는 원시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원시인 등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이 놓였다. 5, 6세의 어린이 키만 한 크기인데 표정부터 행동까지 사실감 넘치게 표현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기에 아주 좋다.
진천동 대구수목원 입구 삼거리에서는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거대 원시인 조형물 이만옹(二萬翁)이 기다리고 있다. 2만 년 역사와 노인의 존칭인 옹(翁)을 합성한 이름이다. 2018년 탄생한 이만옹은 반쯤 땅에 얼굴을 묻은 채 깊이 잠든 모습을 하고 있다. 한때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해 여름 휴가철, 명절 등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마다 캠페인에 활용돼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 달서구 홍보대사로 맹활약 중이다. 선사유적공원 입구 왕복 6차로 도로에서도 이색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털북숭이 남성 원시인 조형물이 도로 안내판 위에 걸터앉아 돌도끼로 안내판을 내리찍는 모습으로 멀리서 보면 실제로 망가뜨리고 있는 것같이 보일 정도로 사실적이다.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광고 제작자 이제석 씨가 디자인했다.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선사문화체험축제 및 선사음악회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석기 제작과 사냥 및 발굴 체험 등 선사시대 삶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 올해 5월 열린 축제에는 6000여 명이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허기진 배는 선사시대 먹거리로 달래면 된다. 달서구는 지역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를 형상화해 ‘달토기빵’을 개발했다. 달서구 지역 18개 빵집에서 판매하고 있다. 원시인처럼 뼈를 잡고 고기를 뜯어 먹을 수 있도록 한 움막갈비를 비롯해 돌도끼로 돌을 부수듯 망치로 껍데기를 깨서 먹는 망치탕수육, 날카로운 화살촉에 족발을 매달아 사냥 후 먹던 모습을 재현한 화살촉 족발 등도 달서구에서 맛볼 수 있다.
시공간 초월 디지털 가상 세계로
과거로 떠난 시간여행이 끝났다며 아쉬워할 필요 없다. 곧바로 다음 코스로 시공간을 초월한 디지털 가상 세계로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대구 대표 산업도시인 달서구는 디지털 전환이 정책과 경제,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발맞춰 디지털 신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공간을 조성했다.
도원동 달서디지털체험센터는 미래 융합 신기술 콘텐츠를 접목한 체험 및 놀이학습 시설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미래지향적 복합문화공간이다. 자율활동실과 실감미디어실, 증강현실(AR) 및 가상현실(VR) 신기술 체험존, 교육실, 디지털제작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디지털 자수기로 나만의 손수건을 만들고 자외선(UV) 프린터를 활용한 소품 제작, 교구를 활용한 로봇 제작 등을 할 수 있다. 자율주행 4족 보행 로봇과 반려 로봇개, 바둑대결 로봇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달서디지털별빛관은 송현동 달서별빛캠프에 있는 뚝딱뚝딱 공작소를 자라나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첨단기술과 문화, 놀이를 접목한 디지털 놀이터로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체험미디어실에서는 모션스캔과 모션월, 모션블레이드, 모션블록, 모션캐치 등 동작 인식이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 실감미디어실에서는 별의 비행, 행성 속으로, 별 내리다, 은하수, 별 스케치 등을 주제로 일정표에 따라 상영되며 우주공간 속에 있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달서선사관은 도심 거리에서 즐긴 선사시대 관광에 이어 선사시대 역사 교육부터 체험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이색 공간이다. 나무 기둥처럼 생긴 큰 막대를 바닥의 구멍에 맞춰 세운 뒤 그 위에 가죽이나 풀을 덮어 움집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동작 인식 화면에 돌이나 창을 던져 매머드 같은 동물을 잡는 사냥 체험과 돌로 만든 갈판 위에 곡식을 올린 뒤 갈돌로 식량을 가공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자연 안의 쉼, 휴식의 완성
후끈한 열기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도로가 이 도시에 여름이 도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럴 땐 더없이 맑고 푸르른 바다가 그리워지는 법이다. 바다가 멀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달서구에서는 초록색 파도가 물결치는 숲으로 뛰어들면 그만이다.
공원과 인접한 곳에는 500년 역사를 가진 독립된 촌락 지역인 수밭골이 있다. 예로부터 숲이 많이 우거진 곳이라 해서 수밭골이라고 불렸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돌담을 비롯해 2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어 도심 속에서 볼 수 없는 정취와 풍광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수밭근린공원 확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달서구는 2028년까지 사업비 480억 원을 들여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도원지 북편 경작지를 여가 녹지로 조성한다. 전망광장과 휴양 덱, 생태학습원, 수변 산책로 등을 설치해 휴식공간 및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키울 예정이다.
올해 초 문을 연 달서 반려견 놀이터는 달서구를 찾은 반려 가족들이 꼭 들러야 할 공원이다. 중·소형견 놀이터와 대형견 놀이터가 분리돼 있고 펫카페, 산책로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매주 월요일에는 휴장한다. 동물 등록이 완료된 반려견만 이용할 수 있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과거와 미래, 도심과 숲이 공존해 조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달서구에서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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