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 붕괴냐, 단기 조정이냐… 엔비디아, 24년전 시스코 닮아 [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6.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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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 엔비디아 주가 비교해보니
“시스코 장비 없인 네트워크 불가능… 엔비디아 GPU 없인 AI 무용지물”
인터넷시대 기술혁신기업 공통점… 주가, 2년간 각각 700%-600% 폭등
시스코, 닷컴버블에 주가 주저앉아… “엔비디아, 시스코 능가” 대세론 여전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가 요동친다. 사흘 동안 주가가 13%나 추락하더니 25일(현지 시간)엔 다시 6.8% 급등했다.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닷컴버블의 상징인 2000년 시스코와 비교하는 분석이 이어진다.

● 주가 급등 차트가 닮았다

엔비디아 주가는 불과 2년 만에 700%가량 올랐다. 16달러이던 주가가 130달러 내외로 뛴 것. 하루뿐이긴 했지만, 18일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4년 전, 이와 비슷한 주가 차트를 그렸던 종목이 있다. 미국 통신장비업체 시스코다. 2년 동안 주가가 약 600% 수직 상승한 시스코는 2000년 3월 잠시 시가총액 1위(5700억 달러)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도 2위는 MS였다.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시스코 목표주가를 끌어올리기 바빴다. 시스코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이어졌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터졌고 주가는 빠르게 무너졌다. 2000년 3월 80달러를 넘어섰던 시스코 주가는 불과 1년 만에 77% 급락했다. 이후 주가는 더 빠져 2002년 10월엔 8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인터넷 대장주의 극적인 몰락이었다.

● 기술혁명 초기의 수혜 기업

지금의 엔비디아가 2000년 시스코와 비슷한 건 차트만이 아니다. 현대판 골드러시 시대의 곡괭이와 삽을 파는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AI 기술 개발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인 이뤄질 수 없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기술기업은 너도나도 엔비디아 GPU를 사려고 줄서기 바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GPU를 가리켜 “새로운 산업혁명을 구동하는 엔진”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혁명이 시작된 1990년대 말, 시스코도 그랬다. 시스코의 스위치와 라우터 없이는 네트워크 구축이 불가능했다. 1995년 22억 달러였던 시스코 매출은 2000년 189억 달러로 불어났다. 당시 시스코 CEO였던 존 체임버스는 이렇게 밝혔다. “인터넷 산업혁명이 이제 막 시작됐고 시스코 제품이 수요를 주도한다.”

이런 폭발적 성장세가 영원히 이어질 듯했지만 아니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인터넷 관련 투자가 쪼그라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시스코 주가는 47달러. 24년 전보다 매출은 세 배가 됐고 여전히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이지만, 주가는 고점에 한참 못 미친다.

월가 비관론자는 엔비디아가 이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자은행 BTIG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8개월 동안 엔비디아 주가 상승률은 827%로 2000년 시스코의 두 배”라며 엔비디아 주가가 “미지의 영역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 여전한 엔비디아 대세론

이런 비관론은 아직까진 소수 의견이다. 주가 차트는 비슷하지만 여러 지표에서 엔비디아가 버블 붕괴 직전의 시스코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주가가 얼마나 고평가됐는지를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엔비디아는 약 70배, 2000년 3월 시스코는 205배이다. 엔비디아 주가가 비싸지만 정점 때의 시스코 수준엔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다.

돈도 더 잘 번다.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은 78.3%로, 과거 시스코(64%)를 크게 앞선다. 성장도 더 빠르다. 엔비디아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62% 늘었다. 시스코는 2000년 55% 성장에 그쳤다.

전 세계 개발자 470만 명이 이용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는 엔비디아의 해자로 꼽힌다. 로젠블랫증권의 한스 모세스만 애널리스트는 “진정한 이야기는 하드웨어를 보완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면서 최근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200달러로 높여 잡았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실적 성장세가 꺾일지 모른다. 만약 엔비디아의 기술 진보 속도가 느려진다면 AMD 같은 경쟁사가 따라잡을 수 있다. 전력과 데이터 부족으로 AI 기술 확장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곡괭이와 삽을 많이 만들어도 광부들 먹일 식량이 동나면 금을 캐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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