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저출생 대책, 왜 매번 실패하는가
성불평등·장시간 노동 등 사회구조 재편 서둘러야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하며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간한 ‘시녀 이야기’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환경오염으로 불임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급락하자 정부는 가임 여부에 따라 여성의 계급을 차등해 통제하며 저출생 해결책으로 대리모를 육성해 지배층 자식을 낳도록 강요한다. 영화 ‘매드맥스’ 속 시타델도 건강한 여자들이 젖소처럼 유축기를 달고 모유를 생산하는 처지에 놓여 있거나, 독재자 임모탄의 여인들처럼 번식을 위한 씨받이로 통제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저출생을 해결하겠다며 쏟아지는 정책들을 보며 이 작품 속 상황이 떠올라 참담해졌다.
정부의 인구정책을 평가하는 국책연구기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켜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기여’하자며 내놓은 대책은 어린 여성이 이성적 매력이 있다는 성차별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조세연은 만남 주선, 사교성 제고를 저출생 해결 정부 정책 수단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주형환 부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미혼남녀 만남 지원·무료 결혼식장 등 세밀한 지원으로 저출생 추세의 반전 시그널을 만들어달라”며 중앙 정부 차원에서 미혼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장려했다. 정책의 효과는 둘째치고 정부의 정책들이 번식기 동물의 활발한 교배 촉진 수준에 머물러 개탄스럽다.
실제로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이후 지난 20년간 저출생 대책 예산으로 총 377조7000억 원(2023년에만 48조2000억 원)을 투입했지만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지난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되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0명 회복을 목표로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3대 핵심 분야(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출산 당사자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출산만을 강조하는 근시안적 정책에 회의적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성장한 청년층의 출산 기피 사유와 청년 세대 내 계층 격차, 직장 여성의 일·가정 양립 어려움, 성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찰과 답변이 해결책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상 저출생 문제 해법은 분명하다. 청년들이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안정적 소득을 보장받으며 안정적 주거가 마련되어 누구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고 출산으로 인한 차별이나 불평등이 해소된다면 결혼 출산 양육은 자연스러운 선택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청년층은 왜 출산 의지가 없는가? 삶의 불안과 불확실성 탓이다. OECD 보고서를 보면, 부모와 함께 사는 20대 청년층 비율은 회원국 평균 50%인데 반해 한국은 81%(2022년 기준)로 가장 높았다. 취업 문제로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 속에서 여성들은 경력단절이나 돌봄 문제 등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택하지 않는다.
출산에 대한 불이익이 있다면 누가 출산을 선택하겠는가? 한국의 여성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정 기간 휴직한 후 정규직으로 복귀하는 것이 어렵다. 연령별 고용률을 보면 20대는 남녀 고용률이 유사하지만,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면 여성 고용률이 60%로 뚝 떨어져 같은 연령대 남성과 30%포인트의 커다란 격차를 보인다. 이 와중에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으로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외국인 가사노동자 1200명을 도입하고 이와 별도로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노동자 배우자 등 5000명을 최저임금 적용 없이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값싸고 쉽게 대체 가능하며 관리비용이 저렴한 도구로 바라보는 현 정부의 민낯이 드러난다.
한국 인구가 2070년 3766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저출생 현상은 세계적인 관심사다. 지난 23일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 2024’ 보고서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유독 많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유아 교육, 양육 비용 등 전반적인 가족 지원 규모를 늘렸음에도 합계출산율의 하락 추세를 막지 못했다”며 그 원인으로 ‘장시간 노동’과 ‘성불평등’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OECD 평균 노동시간인 46.5시간은커녕 주 52시간제를 손보겠다는 입장인 데다 여성가족부를 폐기하고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는 입장이다.
저출생을 단순히 ‘인구’ 문제로 규정하는 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요원하다.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거시적 차원의 사회구조 재편과 더불어 미시적 차원의 정책 입안을 병행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철학을 갖고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근원적인 노력 없이 단기간 성과에 연연한 과시적 대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자식의 행복을 꿈꿀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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