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국민 신뢰 못 받는 정치 존립 가치 없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난장판일 줄 몰랐다. 22대 국회 개원부터 약 한달 동안 일꾼이랍시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은 선거기간 그렇게도 머리를 조아리던 국민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지금의 국회는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매일같이 막말과 갈등으로 치고받는 전쟁터가 됐다. 최근 만난 부산지역 한 의원에게 국회 분위기를 묻자 “살벌하다. 예전에는 여야 간 물밑 대화와 협상의 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더라”고 우려했다.
22대 국회가 출발과 동시에 파행을 겪으면서 몇몇 기록을 세웠다. 지난 5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으로 개원하는 ‘반쪽 개원’을 이뤘고,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야당 단독으로 뽑은 것 또한 처음이다.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21대 국회가 원 구성까지 47일 걸렸다고 하니, 이 정도는 양호하다 안도해야 하나.
단독 의석 171석을 보유한 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더불어민주당도 꼴불견이지만,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무능과 무기력함 또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영남권을 제외한 여당의 4월 총선 참패로 야당의 독주는 예견됐지만 국민의힘이 22대 국회 운영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의문스럽다. 첫 싸움은 18개 상임위원장직 배분을 둘러싼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로 시작됐다. 민주당은 국회 개원과 함께 법제사법위원회·운영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직을 포함한 11개 상임위원장직을 갖고, 국민의힘에게는 외교통일·국방·기획재정 등 7개 상임위원장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핵심인 법사위를 제외한 상임위를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연일 의원총회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매번 맹탕이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매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점심식사를 앞둔 낮 12시 전 의총을 끝내 ‘웰빙당’ ‘귀족당’이라는 비아냥만 들었다. 뾰족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지난 24일 민주당이 남겨 준 7개 상임위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면서 집권 여당의 ‘무(無)전략·무 투지’만 각인시켰다.
여당이 얼마나 ‘나이브’한지는 앞서 열린 당 워크숍에서도 지적됐다. 지난달 말 충남 천안에서 1박2일로 진행한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는 총선 참패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나 긴장감이 없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했고 워크숍 만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리며 함박웃음까지 지어보였다. 그날은 훈련 중 숨진 육군 훈련병의 영결식 날이었기에 야권의 비판은 물론 국민의 따가운 눈총세례를 받았다.
국민의힘이 상임위원장 7자리를 수용하면서 여야 격돌의 1라운드가 끝났다면, 정상화된 듯 외형을 갖춘 국회 원 구성 첫날인 25일부터는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날 여야 의원 모두 참석해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는 시작부터 고성과 삿대질로 6분 만에 파행했다. 회의 시작과 동시에 의사일정 진행과 간사 선임 등을 두고 날선 신경전을 이어가던 의원들은 “예의 없다” “공부 좀 더 하고 오라” “얻다 대고 반말” 등으로 티격태격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 의원의 “존경하고픈 정청래 위원장”이라는 표현에 당사자는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존경하고픈’이라는 표현을 마라” 등의 말꼬리잡기에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런(의원들의 수준 낮은 정치공세) 걸 보려고 기를 쓰고 투표했나 싶다.
여야가 정쟁을 일삼는 동안 시급한 민생 현안들은 스톱 상태다. 의료대란에 연금개혁, 잇따른 북한의 도발과 북러조약 대응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며(양식), 적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며(군비), 이를 기반으로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받아내는 것”이라 했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하게 하나씩을 버린다면 어느 것이냐 묻자, 공자는 군비에 이어 양식을 버리라고 했다. 백성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정치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법 독주를 남발하는 야당이나 국정 전반에서 존재감 약한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임은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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