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위험의 이주화

이은정 기자 2024. 6.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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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다.

전국적으로는 조선업계 외국인 근로자가 2만 명에 육박한다.

가뜩이나 작업 환경이 위험한 데 한국인 작업반장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하면 한국말을 조금 아는 외국인 근로자가 전달하는 식이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올해 들여오는 비전문 인력(E9) 규모는 16만50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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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다. 시내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 보니 계산원이 필리핀인이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구매할 때도 동남아시아 출신 직원들이 많이 보였다. 과거 호텔 청소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가끔 봤지만 이제는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소매유통업체에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초고령·저출산 사회에 진입한 일본 경제가 부족한 일손의 상당수를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조선업이 활황을 맞으며 경남 거제에선 2022년 5861명이었던 등록 외국인이 올 5월 현재 1만3075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불황 시기에 구조조정으로 떠난 내국인 하청근로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전국적으로는 조선업계 외국인 근로자가 2만 명에 육박한다. 베트남 태국 파키스탄 몽골 등 여러 나라 출신 근로자가 함께 일하다 보니 언어 소통이 안되는 게 심각한 문제다. 가뜩이나 작업 환경이 위험한 데 한국인 작업반장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하면 한국말을 조금 아는 외국인 근로자가 전달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인명 사고가 잦다.

내국인이 3D업종을 기피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외국인 공급 없이는 산업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올해 들여오는 비전문 인력(E9) 규모는 16만5000명에 이른다.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메우는 ‘위험의 이주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는 2017년 6302건에서 2022년 8286건으로 5년 새 31% 늘었다(고용노동부).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 1차 전지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 일용직 근로자였다. 리튬 전지는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1000도 이상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물이 닿으면 2차 폭발 위험이 있어 일반적인 화재 진압 방식을 쓰기도 어렵다. 회사 측 주장과 달리 외국인 근로자들이 제대로 안전 교육이나 대피 훈련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공장 내부 구조를 잘 몰라 피해가 더 컸을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리셀에 이들을 파견한 인력업체가 고용·산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를 대거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위한 안전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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