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개발 애먹는 유럽… “기술? 이젠 돈으로 사겠어”
25일(현지 시각) 독일의 폴크스바겐 그룹이 미 전기차 기업 리비안에 향후 3년간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이 리비안 지분을 3년에 걸쳐 30억달러 치 인수하고, 나머지 20억달러는 두 기업이 공동으로 만들 합작 회사에 투자해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첨단 전기차 트렌드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폴크스바겐이 자체 기술 개발이 더디자, 이미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투자하는 ‘기술 구매‘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EU(유럽연합)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예고해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기술 기업들이 저평가된 틈을 노린 것이란 해석이다.
2009년 설립된 리비안은 미국 MIT 출신 엔지니어인 R.J 스캐린지가 창업한 곳으로 전기차 플랫폼이나 충전, 성능 진단, 무선 업데이트 등 차량 관리 서비스 소프트웨어(SW) 성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폴크스바겐은 이번 투자로 이런 기술을 바로 사용하기로 했다.
◇”기술 개발” 아닌 “기술 구매”에 나선 車 기업들
과거엔 자동차 기업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품사 지분을 인수하거나 합작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다른 자동차 기업의 지분 확보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작년 말에도 중국 전기차 기업 샤오펑에 7억달러(약 9700억원)를 투자해 지분 약 5%를 인수하고 차세대 전기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샤오펑과 전기차 8종을 만들어 중국 현지 판매를 할 계획이다. 푸조, 시트로앵, 피아트 등 유럽이 주요 시장인 브랜드를 보유한 스텔란티스 그룹도 작년 10월 중국 리프모터 지분 20%를 16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와 합작해 개발하는 전기차를 유럽에서 생산·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1위인 르노 그룹도 지난 5월 중국 지리차와 공동으로 만든 하이브리드 및 배터리 시스템 개발 기업 호스(Horse)를 설립해 업무를 시작했다.
차 기업들이 ‘기술 구매’에 나서는 것은 일찍부터 전기차를 개발해 다채로운 미래차 기술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격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인기 있는 전기차를 만드는 경쟁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보니, 없는 기술을 3~4년에 걸쳐 개발하는 것보다 외부 기술을 사서 빠르게 대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예컨대 폴크스바겐은 미래차 SW 개발을 위해 2020년 만든 사업부 카리아드(Cariad)는 지난해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자체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6500여명까지 채용을 늘렸지만, 전통 차 기업의 조직 문화 등으로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르노, 스텔란티스의 푸조 등은 유럽이 주무대인데, 중국 전기차가 유럽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하면 전기차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시장점유율을 지킬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서 어떤 기술이 각광받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보니 ‘배트를 짧게 잡는’ 단기적인 전략을 선택하는 기업이 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종속 염려도
다른 기업의 기술을 사오는 것이 기술 종속을 부른다는 우려도 있다. 독자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향후 협력 관계가 깨질 경우 그간 시장에 내놨던 전기차 등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차를 작동시키는 핵심 운영 체제(OS)를 한번 정하면 그 이후부터는 이를 기반으로 주요 기능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기술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업데이트를 하거나 오류를 잡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또 기술 개발 방향이나 철학이 다를 경우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지난 2022년 4월 공동 기술 개발을 선언했던 미국 GM(제너럴모터스)와 일본 혼다는 당시 “5년 뒤부터 중저가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10월 “개발 방향 등에 의견 차가 크다”며 이를 공식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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