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엄마의 콘서트
한 달 전, 임영웅의 콘서트가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물론, 이번에도 티케팅에 실패했다. 이번에야말로 꼭 성공해서 엄마와 함께 콘서트를 즐기고 싶었다. 친구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다 같이 20시 정각에 티켓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대기 40만 명. 내 앞에 400명, 4만 명도 아니고 40만 명이 있다니 절망스럽기보다는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장 30분 동안 붙잡고 늘어졌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내가 티케팅에 매달리는 사이 엄마에게 계속해서 전화가 오고 있었지만, 전화를 받다가 가까스로 20만 명까지 줄어든 티케팅 앱에서까지 튕겨나가 버릴까 모든 전화를 거절했다. 모든 일이 일단락되고 나서야 시무룩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 됐다”라고 전하자, 엄마의 입으로 “내가 됐다”는 기적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결론만 말하자면 엄마가 아니라 엄마 친구 딸이 성공했다. 공연 날에 맞춰 엄마가 상경했다. 친구와 함께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우리는 공연이 끝나고 서로 길이 엇갈리지 않기 위해 공연장으로 미리 답사를 나섰다. 분명 공연이 시작하기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는데도 공연장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정문으로 향하는 길은 콘서트 현장보다는 마을 잔치가 열린 풍경에 더 가까웠다. 다른 콘서트장을 가본 경험이 많이 없어 비교는 어렵겠지만, 그날의 월드컵경기장은 그 어떤 가수의 콘서트장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을 것이라 단언한다. 정문까지 이어지는 골목에는 온갖 종류의 노점상들이 즐비했는데, 마치 관악산 입구에서 본 것 같은 파란색 정감 있는 아이스박스 안에 얼린 물, 각종 음료수를 파는 상인들은 물론이고, 부채부터 시작해 배지, 스티커, 수건까지 온갖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마치 장날처럼 포진해 있는 먹거리 포차들이었다.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과 노란색 색 바랜 파라솔 아래 튀김, 어묵, 국수까지 온갖 잔치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는 연신 감탄하며, 서서히 하늘색 무리에 섞여들어갔다. 엄마는 온전한 주인공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엄마에게 길을 안내하는 게임 속 NPC 그 자체였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내가 조연이 된 이 기분은 어렸을 적 운동회에서 느낀 적 있다. 나는 시골 동네에서 태어났다. 반이 학년마다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어른들은 운동회 날이면 작정한 것처럼 학교로 몰려들었다. 우리 입에는 김밥을 물려주고 어른들은 대낮부터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 운동회가 끝나면 우리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집에 홀랑 보내버리고 남은 술과 음식들을 먹고 마시던 그때의 엄마 아빠가 아주 오랜만에 기억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연장 안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오래전 그때처럼 한참 바라보다 돌아섰다.
공연이 끝나고 엄마의 친구가 찍어주신, 공연을 즐기는 엄마의 사진을 보고 문득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날은 온전히 엄마의 행복만 되새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딸이 좋아해서, 아들이 좋아해서 좋았던 기억이 아니라 온전히 엄마가 행복했던 기억으로.
공연이 끝나고 피곤하고 힘들었을 엄마에게 공연은 어땠냐 물었을 때 다른 형용사 없이, 딱 한마디가 돌아왔다.
“끝내줬어요.”
나는 이제 한 가지만 바란다. 임영웅씨가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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