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4] 소소한 일상을 표현하며 살아가기
불을 껐더니
시원스러운 별이
창으로 드네
灯[ひ]を消[け]せば涼[すず]しき星[ほし]や窓[まど]に入[い]る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니 여름은 여름이구나 싶다. 그래도 해가 지면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의 불볕더위에 지친 인간을 위로한다. 그런 여름밤이면 하나둘 떠오른 푸른 별이 더욱 청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원스러운 별은 여름의 계절어였다. 문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도 백여 년 전 어느 여름밤 그런 별을 보았다. 오사카로 강연하러 갔다가 위궤양으로 쓰러져 인근 병원에 입원한 소세키는, 침상에 누워 병실이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별이 불을 껐더니 창으로 다가와 머리맡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본다. 낯선 곳에서 여름밤 땀을 식혀준 서늘한 별의 방문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소세키는 그때 느낀 소소한 감동을 종이에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친구에게 편지로 띄워 보냈다.
사생문(寫生文)이라는 말이 있다. 실물 경치를 그리는 대회를 이르는 사생대회(寫生大會)의 그 사생이다. 베낄 사(寫)는 사진이라는 낱말에도 있고 날 생(生)은 살아 있음을 뜻하니, 사생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회화의 한 기법이다. 스케치의 번역어다. 그러니까 사생문은 스케치하듯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쓴 글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 하이쿠처럼. 이 말을 만든 사람은 소세키의 오랜 벗이자 하이쿠의 근대화에 앞장선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다. 시키는 글도 그림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스케치하듯 옮겨적는 일이 가능하며, 사생문이야말로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글쓰기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개념은 소세키를 비롯해 일본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일본어에서 근대적 시와 산문의 출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깊은 밤, 실내를 환하게 밝히던 불이 탁 꺼지면, 돌연 달과 별과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이는 창밖이 더 밝아지고 이쪽은 어둠에 잠긴다. 그 극적인 반전이 인간의 눈에 짙은 흔적을 남긴다. 달과 별이 돌연 나의 창가로 다가와 문을 두드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지치고 외로울 땐 운행하는 우주 속 자연물이 종종 기대고 싶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저 그뿐인 소소한 일상을 그림이나 글로 남기는 일. 혹은 사진으로 찍는 일. 혹은 음악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 이런 자기표현이 곧 예술이다. 예술은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표현은 내가 여기 살아 있으며, 내가 나와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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