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100m 높이의 태극기

박희준 2024. 6. 2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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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4괘가 아닌 8괘 태극기였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기로 했다.

태극기를 높이높이 올리기보다 오히려 국민 곁으로 낮게낮게 내려오도록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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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어딘가를 향한 처절한 외침이다. 깃발은 단순한 천조각이 아니다.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성, 가치관,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표다. ‘맨 처음 공중에 깃발을 달 줄을 안 그는’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인류 문명과 함께한 것만은 분명하다. 초기에는 전장에서 주로 쓰였을 것이다. 깃발 하나에 수천, 수만의 군대가 일사분란하게 진형을 갖추었다. 깃발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중세 때에는 기사와 귀족들이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깃발에 새겨 위세를 과시했다.

깃발 중에서도 국기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고 국민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다. 6·25전쟁 때 서울을 탈환한 군인들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내거는 흑백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새삼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태극기는 1882년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처음 사용됐다. 4괘가 아닌 8괘 태극기였다. 지금과 같은 4괘 태극기는 박영효가 만들어 이듬해 국기로 채택됐으나 4괘나 태극 문양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태극기가 만들어진 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국기제작법’을 통해서다.

군사정권 시절 오후 6시만 되면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국가하강식이다. 길 가던 시민들이 일제히 최면에 걸린 듯 멈춰섰다. 국기에 대한 존엄을 국민에게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브라질만큼 국기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나라가 없다. ‘노랑과 초록’을 뜻하는 국기 ‘아 아우리베르지’는 의상과 모자, 신발, 가방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우리나라도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태극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국기에 관한 규정’을 완화했으나 태극기를 향한 엄숙주의가 여전하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제 6·25전쟁 74주기를 맞아 참전용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밝혔다고 한다. 군사분계선 너머에 북한을 향해 세운 대성동 마을의 99.8m보다 높다. 과유불급이다. 태극기를 그렇게 높인다고 해서 우리 자긍심이 드높아질까. 태극기를 높이높이 올리기보다 오히려 국민 곁으로 낮게낮게 내려오도록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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