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핵무장의 유혹, 따지고 보면

박병진 2024. 6. 2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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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 이후 핵무장 논쟁 가열
美 “현 억제력으로 충분” 선 그어
미 대선 이후 쟁점화할 가능성 커
안보 급변 대비, 검토 필요성 충분

2016년 9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실행된 북한의 다섯 번째 핵실험이 있고 나서다. 새누리당 대선 잠룡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가열됐다. 제기된 핵무장론은 크게 두 가지다. 김무성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억지를 위해 당연히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방법론에선 차이를 보였다. 원유철 전 원내대표와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구체화된 외교적 해법을 주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지층 표심 공략에 나선 당대표 후보들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왔다. 나경원 후보가 지난 25일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자, 원희룡 후보는 “지금은 핵무장에 앞서 워싱턴선언의 실효성 확보를 통해 대북 핵 억제력을 강화할 때”라고 맞받았다. 윤상현 후보는 “한반도 영해 밖에 핵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상시 배치하고, 한·미 간 핵공유 협정을 맺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후보는 “이제는 일본처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전 4인4색의 백가쟁명식 논쟁의 되풀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가팔라졌다. 가뜩이나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의 힘의 불균형을 고민하던 차에 핵무장론이 힘을 받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74주년 기념사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준(準)군사동맹 성격의 조약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고는 거듭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까지 나서 북한 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술핵 재배치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는 물론이고, 자체 핵무장에 재처리 권한까지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지난 24일 워싱턴 미 외교협회(CFR) 주최 포럼에 나온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일단 현재의 억제력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 주장은 물론 미 의회 등에서 제기된 전술핵 재배치와 핵 공유 요구에도 선을 그은 것이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미국이 한반도의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대신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워싱턴선언 이외의 추가적인 조처는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북한과 러시아 변수가 커질수록,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국의 핵무장 이슈는 미 정치권에서 쟁점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알려진 대로 핵무장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핵 개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다. 핵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로 유엔 안보리 문턱을 넘기부터가 쉽지 않다. 유엔 제재에다 핵무기 생산과 보관 등에 따른 갈등을 초래하는 것도 부담이다. 일본처럼 잠재적 핵 능력 보유가 대안 모델로 제시되나 이 역시 걸림돌이 없지 않다. 우선 2035년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미국이 동의할지가 의문이다. 2015년 원자력협정 협상 때 박근혜정부가 핵 재처리 능력 확보를 위해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핵 개발을 하는 건데, 지금처럼 한국 내에서 자체 핵무장 목소리가 높다면 더더욱 그렇다. 미국산 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도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더욱이 5년마다 정권이 바뀔 수 있고, 그때마다 외교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게 우리 정부 현실이다. 치밀하고 뚝심 있게 핵 관련 정책을 추진하길 기대하기는 언감생심이다.

그럼 접어야 하나. 미국 핵우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자는 데 동감한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할지 알 수 없다. 전쟁은 만약을 대비하는 일이다. 당장 착수하지 않더라도 자체 핵무장, 핵공유,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을 둘러싼 검토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만에 하나 트럼프 재집권 시 한·미동맹의 비용을 줄이겠다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한국에 떠넘긴다면 어찌할 건가. 자칫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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