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정가의 수십년 왕따였던 RN, 어떻게 악마화된 이미지를 벗었나
르펜, '초대 대표' 부친 제명하며 당 정비…반이민 고수하면서도 외연확장
'이민자 아들' 28세 대표, 어린시절 목격한 폭력 등 성장 서사·외모로 유권자 공략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프랑스 극우당 국민연합(RN)이 지난 9일(현지시간)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오는 30일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도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이 극우 이미지를 바꾸며 지지층을 넓힌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상황을 두고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RN이 지금은 어떻게 프랑스 정가를 휩쓸게 됐는지 이미지 쇄신 과정을 25일 조명했다.
RN은 수십년간 프랑스 정치에서 사실상 왕따와 같은 존재로, 다른 정당에선 교류조차 거부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초창기엔 대놓고 인종차별주의를 외치기도 했지만 RN은 점차 논란의 기조는 버리고 반(反)이민주의는 고수하면서 재정문제 등을 의제로 제기하는 등 외연을 넓혀갔다.
RN는 1972년 '국민전선'(NF)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실패할 운명이라 믿는 '신질서'의 정치적 부문으로 만들어졌다.
초기 정당원은 전직 나치 군인, 나치 점령하 괴뢰정부인 비시정권의 나치 부역자, 프랑스 식민 통치로부터 알제리의 독립을 막으려 한 테러 조직의 전직 구성원 등이었다.
이들은 보수적인 가족 가치의 복원과 반공주의, 반이민주의를 주창했다.
그중에서도 초대 당수 장 마리 르펜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인종에 대해 "같은 능력이나 같은 수준의 역사적 진화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유대주의 발언을 반복하고, 홀로코스트를 공공연히 폄하한 혐의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RN은 반유대주의 등의 기조는 거둬들였지만, 반이민만큼은 고수했다. 이들은 프랑스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고, 프랑스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사회 보장, 주택 보조금, 병원 치료 등에 있어 프랑스 국적자에게는 '프랑스 국적이 아닌 거주자'에 비해 우선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십년간 다른 정당들은 당원들에게 RN에 맞서 전략적으로 투표하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2002년 르펜이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하자, 좌파 정당들이 보수 우파 자크 시라크를 지지한 게 가장 대표적 사례다.
결국 시라크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고, 르펜의 득표율은 18% 미만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RN의 지지자가 늘면서 이러한 전략들은 점차 동력을 잃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나라가 변화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당이 이미지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그 중 한 요인은 장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다.
마린 르펜은 2011년 은퇴한 부친의 뒤를 이어 당대표가 됐다. 그는 '악마화'된 RN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했다. 부친이 내뱉은 반유대주의 발언과는 거리를 뒀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는 '야만의 극치'라고 선언했다.
그는 2015년 부친을 제명하는 등 당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일부 당원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이며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으로 비난을 불렀다.
2018년 마리 르펜은 당명을 RN으로 바꿨다. 재정문제까지 포함하며 당 기반 확장에도 나섰다.
파리 시앙스포의 질 이발디 정치학 교수에 따르면 RN의 뿌리는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다. 대규모 민영화와 공무원 감축, 소득세 축소 등을 요구한다.
초창기 지지자 대부분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인식한 RN은 공공서비스 확대와 같이 일반적으로 좌파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조치들을 제안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마린 르펜은 2022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41.5%를 득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RN 당원이 대거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의원 수는 8명에서 단번에 약 90명으로 늘었고, 2명은 국회부의장에 올랐다. 상임위 의석도 확보했다.
여론도 달라졌다. 작년 10월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44%가 'RN에 국정운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동시에 이민과 범죄에 대한 RN의 강경한 입장은 점차 주류가 됐다. 작년 국회에서 처리한 이민법안의 다수가 RN의 의제를 통합한 것이었다.
다만 RN이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스탠퍼드대 세실 앨두이 교수는 "이제 희생자들의 범위가 무슬림과 이민자로 줄어든 것"이라며 "이 정당의 DNA는 사회와 개인을 민주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회계약을 맺는 자유로운 주체로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핏속에 있는 기원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RN 이미지 변신에는 현재 당대표 바르델라의 역할도 크다.
훤칠한 외모, 세련된 옷차림에 온화한 태도와 언변을 자랑하는 그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의 압승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바르델라는 르펜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부 유권자들에게는 RN의 인종차별적 뿌리를 연상시키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인 그는 무슬림 이민자와 빈곤층이 많은 파리 교외 주택단지에서 자랐다. 여기서 그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어린 시절 폭력과 마약 거래를 눈으로 보며 지금의 강경한 반이민, 반이슬람 정책을 좇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선거에 적극 활용하며 젊은 층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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