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보조금이자 노동력"…형제복지원과 아동 거래 정황 [현장탐사]
<앵커>
1980년대 덕성원이라는 곳에서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서 강제 노역을 시키고, 또 학대했다는 피해자들의 이야기, 저희가 어제(25일) 들려 드렸습니다. 오늘은 덕성원이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당시 아이들을 물건 거래하듯이 다른 기관과 주고받은 정황이 있단 내용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현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안종환 씨는 7살이던 지난 1982년, 빨간 승합차에 실려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끌려간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안종환/덕성원 피해자 : 김○○(덕성원 원장) 씨가 그때 마당까지 왔죠, 형제복지원 앞마당까지. 그거(승합차) 타고 이제 덕성원으로 가게 된 거죠.]
이렇게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또 덕성원에서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진 건 안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덕성원 피해자 : 이게 뭔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항상 보면 형제복지원에 잠깐 있다가 우리 쪽(덕성원)으로 넘어오고.]
두 기관은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요? 단서를 찾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통해 1980년대 형제복지원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1987년 형제복지원 이사 명단에서 발견된 김 모 씨, 확인 결과 덕성원 설립자의 사위이자 당시 덕성원 원장이었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1985년 부산시 사회복지협의회 명단을 보니 김 씨가 초대 회장이었고,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도 회장단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두 시설 간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는 또 있습니다.
650여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형제복지원 사건을 맡았던 수사팀이 당시 박 원장의 수표 사용을 추적한 내역, 1986년 7월 18일, 형제복지원의 박 원장이 덕성원 원장 김 모 씨에게 2천만 원을 대여하는 등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도 확인됩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SBS에, 부랑인 수용자들은 보조금이자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주는 사업의 도구였고, 형제복지원과 다른 수용시설 간 수용자 거래가 빈번했던 사실이 확인됐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찬섭 교수/동아대 사회복지학과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 조사) : 영화숙에 있다가 형제복지원 갔다가 덕성원에 갔다가 그런 경우도 있고. 돈벌이 수단, 하나의 정부 보조금 받아내기 위한 근거, 공사비를 아끼고 할 수 있는 어떤 아주 값싼 노동력…. 이렇게 취급한 거죠.]
한 해 150~200명 안팎의 아이들을 수용했던 덕성원은 이런 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겁니다.
해운대 알짜 땅에 있던 덕성원 부지와 건물은 지난 2001년, 한 건설회사에 67억 원에 매각돼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당시 덕성원 원장을 맡았던 설립자의 아들 서 모 씨는 매각 과정에서 11억 원의 뒷돈까지 챙긴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매각 부동산 가운데는 아이들을 강제 노역시켜 지은 여자 기숙사와 어린이집 건물도 포함돼 있습니다.
[덕성원 피해자 : 해운대 쪽을 아예 안 갔어요. 너무 싫어서.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아예 이 기억을 지우고 싶었어요.]
재단 운영을 둘러싼 분쟁과 소송 과정에서 덕성원 일가가 재단 돈을 사적으로 사용한 정황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덕성원 일가의 입장을 듣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요양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요양병원 직원 : 그냥 가십시오. 안 계시니까. 원장님께서 안 된다고 합니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명확한 입장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요양병원 원장 (덕성원 설립자 손자) : 제가 답변드릴 사안이 없어요. 이미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 다 끝난 상황이고요.]
덕성원은 제2의 형제복지원이었다는 정황이 증언과 기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덕성원 재단의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고,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도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벽에 막혀 있습니다.
[김재형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 관리 감독을 국가가 해야 되는 책임이 발생하게 됩니다. 국가가 먼저 적극적으로 사과를 하고 장시간에 걸쳐 이런 것들을 조사하고 배·보상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오영택, 디자인 : 조수인, VJ : 김준호)
이현영 기자 lee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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