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갈등 풀려면 정치적 다양성 인정해야”[2024 경향포럼]

조문희 기자 2024. 6. 2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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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 강연 - 옌쉐퉁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이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정치적 탈세계화와 민주주의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개인 삶 보호가 최우선 아닌
‘정치적 반세계화’ 현상 가속
‘인도주의적 개입’은 사라져

“할리우드 영화에서 범죄자들이 은행을 털면서 인질극을 벌이면, 경찰이 ‘인간 방패’를 다 죽여서라도 범인을 잡습니까?”

옌쉐퉁(閻學通)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이 26일 열린 <2024 경향포럼> 두 번째 세션 ‘위기의 민주주의, 진단과 처방’ 연단에서 가자 전쟁을 비유해 한 말이다. 범죄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인질은 팔레스타인 등 지역 내 민간인, 경찰은 이스라엘과 서구 국가다. 비유를 빌리자면 은행털이범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경찰이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옌 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부상을 이미 1990년대 ‘중국굴기’라는 개념으로 예견한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이다.

그는 오늘날 국제사회를 ‘정치적 반세계화’라는 용어로 규정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반세계화란 각국에서 “더 이상 개인의 삶 보호가 최우선이 아니며, 주권이 인권보다 우선순위를 갖는” 현상이다.

“이스라엘 또는 서구 국가들이 이 전쟁(가자 전쟁), 군사적 행동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하마스가 현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다, 하마스 탓이다’라고 합니다.”

특정 국가가 인권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한 국가의 행태를 다른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말로는 ‘인권 규범의 위반’이다.

이는 국제관계에서 최근 10년 동안 나타난 새로운 양상이다. 냉전 이후 수십년 동안 각국은 민주적 체제를 지향했고, 최소한 겉으로는 개인 인권을 중시해왔다.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보호책임), ‘인도주의적 개입’처럼 특정 국가에서 인종청소 등 개인 삶에 치명적 위해가 거듭될 경우 국제사회가 관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평가하는 개념이 이때 나왔다. 옌 원장은 “(하지만) 이제 서구 국가들은 이스라엘 영토 자주권을 위해선 인간 방패의 목숨은 귀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냉전 이후 나타난 인권 존중은 더는 없다”고 했다.

옌 원장은 정치적 반세계화의 기원 역시 서구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했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상징되는 경제적 반세계화를 정치적 반세계화의 시작점으로 봤다.

“그때부터 영국과 EU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줄었고,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졌으며, 이후 여러 국가가 유사한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 시기 전후로 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모든 사회문제를 외국의 영향과 간섭에 국경을 개방하는 자유주의 정책 탓으로 돌린다. 적대적 갈등 양상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옌 원장은 “새 이념은 등장 이후 20년 이상 유지되는데, 포퓰리즘은 이제 막 모멘텀을 얻어 최소 10년은 갈 것 같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이 마지막 전쟁일 것 같진 않다”고 전망했다.

옌 원장은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국제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체첸·코소보·조지아·크름반도·우크라이나까지, 동아시아보다 유럽에서 더 많은 전쟁이 벌어졌다는 게 옌 원장이 겨냥하는 역설이다. 옌 원장은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더 발달했다면, 동아시아보다 평화로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유럽·북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사한 다자간 집단 안보 협의체를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구성하자는 주장에 대해 “서구 국가가 주는 약이 독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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