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확인된 희생자 3명뿐... 영정도 이름도 없는 분향소
시민들 “우리도 어려울 때 외국 나가 고생했는데”
영정도 위패도 없었다. 26일 오전 경기 화성시청 로비에 설치된 리튬전지 공장 화재 참사 분향소는 적막했다. 희생자 23명 시신 중 신원 확인이 완료된 사람은 한국인 3명뿐(26일 오후 8시30분 기준)이어서 분향소는 현수막과 국화로만 채워져 있었다. 오전 9시가 지나자 유족과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 중국인 어머니는 “스물여섯 살짜리 딸을 잃었는데 시신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또 다른 여성은 제단에 국화꽃을 놓다가 주저앉아 오열했다. 따라온 세 자녀도 같이 울었다.
시민 김한종(55·서울 강남구)씨는 분향소를 찾은 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외국 나가서 고생 많이 했다. 저분들도 똑같은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 일하시다 돌아가셨다”며 “남 일 같지 않아 찾아왔다”고 했다. 윤호중(68)씨는 “중동과 말레이시아 건설 현장에서 12년간 일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시공 업체를 운영한다는 이종화(55)씨는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비극이 없도록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비보를 들은 중국인 유족들도 속속 입국하고 있다. 어머니를 잃은 중국인 남성 한 명이 지난 25일 밤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 경기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시신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26일 정오 기준 희생자 8명의 유족 약 30여 명에게 연락을 완료한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입국하는 유족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고 했다.
유족 대부분은 시청 인근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신원 파악을 기다렸다. 29세 외동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사고 전날까지 딸과 연락했는데, 딸아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박모(65)씨는 이번 사고로 “조카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며 “아직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해 괴롭다”고 했다.
관내 장례식장 5곳엔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분류된 희생자들이 ‘신원 미상’ 상태로 안치됐다. 이날 시신 4구가 안치된 화성유일병원 장례식장은 빈소도 유족도 없이 고요했다. ‘당신의 고귀한 삶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고 적힌 모니터 화면만 어두운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서울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한국인 서모(45)씨는 전신 화상을 입어 의식 없이 위독한 상태다. 병원에서 만난 70세 노모는 “아들이 모르는 번호는 보이스피싱이니까 받지 말라고 해서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다. 문자를 보고서야 뒤늦게 아들이 변을 당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아들 얼굴과 다리가 퉁퉁 다 부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라며 울었다.
일부 유족은 화성시 공무원들의 해외 연락·신원 확인 등 상담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A씨는 본지 기자에게 “40분을 기다렸는데 상담은 5분 만에 끝났다”면서 “대회의실 안에 공무원이 20명 넘게 있던데,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25일 유족들이 줄을 서서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부처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 의전에만 집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성시 관계자는 “팀장급 공무원들을 유족들에게 일대일로 배치해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화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태환 수석부위원장은 “자본의 청구를 받아 각종 규제 완화만 골몰하는 윤석열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민노총 등이 참여한 대책위는 “(참사가 발생한) 아리셀의 원청은 에스코넥이며, 에스코넥은 삼성SDI의 협력업체”라며 이번 참사와 삼성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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