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서의 기쁨[백승찬의 우회도로]
‘인사이드 아웃2’ 새 캐릭터 불안
기쁨의 역할은 성장하면서 줄어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불가능에 절망보다 가능한 성취를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에는 전편에 없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전편에서 어린이였던 라일리의 감정 본부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만 있었는데 속편에서 청소년이 된 라일리의 감정 본부에는 불안, 당황, 따분, 부럽, 추억이 불쑥 출현한다. 따분은 소파에 누워 세상사를 냉소한다. 부럽은 큰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선망한다.
무엇보다 2편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는 감정은 불안이다. 통상 ‘불안’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뉘앙스와 달리, <인사이드 아웃2>의 불안은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불안은 미래의 부정적인 결과를 모두 그린 뒤 이에 대비하게 한다. 고등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어떡하나, 아이스하키 캠프에서 실력을 발휘 못해 팀에 뽑히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일리의 불안은 또래 청소년이 쉽게 가질 법한 것들이다. 이 영화에서 불안은 얼핏 빌런처럼 보이지만, 창작진은 불안도 폭주하지 않고 적당한 발언권을 가진다면 한 사람의 자아 형성에 필요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취직 시험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테고, 건강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건강검진을 소홀히 할 것이다. 우리는 기쁨과 슬픔과 불안과 따분이 두루 섞인 자아를 형성해 간다. 시기나 타고난 성향 같은 것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주목할 것은 성장하면서 기쁨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점이다. 전편은 기쁨이 얼핏 부정적으로 보이는 슬픔의 역할을 제한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상대를 인정하는 과정을 그렸다. 후속편에서도 기쁨은 불안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다가 오히려 본부에서 추방당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쁨은 라일리를 움직일 주도권을 잃는다. 가족 애니메이션답게 해피엔딩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의 기쁨이 줄어든다는 메시지는 꽤 우울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삶의 감정들을 돌아봤다. 지금 내 안에는 어떤 감정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 자라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었나. 아빠와 함께 나들이 가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 하나, 유치원 선생님의 칭찬 하나에 하루 종일 기뻐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기쁨의 몫은 조금씩 줄어든다. 기쁨이 역할을 하기 위해선 더 많고 복잡한 조건이 필요해진다. 때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 요구될 때도 있다. 서울의 고가 아파트에 살아야,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직장을 구해야,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야 할 수도 있다.
호평받고 있는 김기태의 데뷔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팬, 삶이 조금 지겨워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한 30대 후반 여성, 폐광촌 고등학교의 역도 선수가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이다. 소설에 ‘보통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겠지만, 김기태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 인물들이 절망하고 고통에 빠져 파국으로 치닫게 두지 않는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주인공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기뻐할 일이 많지 않은 인물들이다. 둘은 고등학교 때 ‘미납자’였다. 부모의 불화 속에 큰 진주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진다. 고려인 니콜라이는 연 소득이 적어 좀처럼 귀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풍족할 가망은 없어 보이는 삶이다. 둘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라는 질문에 이르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다고 느낀다. 그래도 작가는 이들이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거나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한다고 적는다. 작가는 이들이 공짜인 섹스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다리가 맞지 않는 싸구려 조립 식탁을 고칠 수 있게 하며, 바닥에서도 맛있게 밥을 먹게 한다. 이 젊고 불쌍한 연인에게 한 줌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다.
삶이 기쁨만으로 충만할 수는 없겠지만, 기쁨이 없는 삶은 무슨 소용인가. 기쁨이 어린 시절처럼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의지로라도 기쁨을 초대해야 한다. 불가능한 조건에 절망하는 대신, 가능한 성취에 기뻐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강하다.
백승찬 문화부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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