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헌법 제84조와 트럼프 사법리스크의 관전 포인트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둘러싸고 진영 간 공방이 뜨겁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방의 핵심은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계속 재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이다.
이 점에 대해 이 나라의 전직 법무부 장관 두 명의 견해가 대척점에 있다. 한동훈 전 장관은 형사상의 불소추에 ‘재직 이전의 기소로 인한 형사재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현재 받고 있는 재판의 출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반면 조국 전 장관은 한 장관이 조문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했거나 무지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형사상의 불소추에 형사재판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에 임하지 않게 된다는 주장이다.
미국 대선 주자 트럼프의 사법리스크는 우리 헌법 84조 논쟁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준거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4일자 ‘유죄선고 받은 트럼프, 대선 계속할 수 있을까’란 기사에서 트럼프 사법리스크가 미국 정치에 몰고 온 전례 없는 비현실적 상황을 소개했다. 이론적으로 트럼프의 옥중 당선, 당선 후 형사재판, 셀프사면 같은 것들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미국 헌법 설계자들이 상상했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가 당선되면 연방판사들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우리의 헌법 설계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국의 헌법에는 당선된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트럼프와 이재명이 당선되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헌정사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의 당선은 ‘현직 대통령이 형사피고인으로서 재판을 계속 받느냐’는 헌법적 문제로 필히 직결된다.
올 11월 치르는 미국 대선을 우리가 공부하듯이 관전할 수 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다행이다.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의 사법리스크가 어떻게 흘러가고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형사재판의 헌법적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미국 헌법에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없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 법무부에서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작성된 문서는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어렵다는 의견을 담고 있다. 핵심 요지는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안정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서는 주로 기소 단계에 관한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서는 우리의 경우처럼 답이 없다. 따라서 트럼프가 하급심에서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상급심 재판이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우리는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법적 절차를 주시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말하듯이 연방판사들이 새롭게 헌법적 판단을 하게 되는 법의 항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법적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로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결국 재임 중 트럼프의 재판이 계속될지 여부는 법적 논쟁과 법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법원은 다양한 주장을 검토하여 법률적, 헌법적 해석을 통해 재판을 계속할지 중단할지 결정할 것이다. 연방 및 주 항소법원, 그리고 미국 대법원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는다면 그 나름대로 우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의 대선은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헌법 84조를 둘러싼 논의의 장은 한국 민주주의, 한국 정치,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송백석 칼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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