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싱글벙글쇼' 가고 이문세 오고, 레전드 들고난 속사정 [연記者의 연예일기]
[OSEN=연휘선 기자]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켰던 '싱글벙글쇼'가 떠났고 후속으로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가 생겨났다. 여기에 '레전드 DJ'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가수 이문세는 '안녕하세요'라는 담백한 인사로 돌아와 경력직신입으로 벌써부터 안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아쉬움을 딛고 보낸 과거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이 대대적인 라디오 개편을 할 수밖에 없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5월과 6월, 방송가는 라디오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먼저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약칭 아침창)'에서 김창완이 하차했다. 비록 김창완은 또 다른 SBS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돌아올 것이 알려졌으나, 후임으로 배우 봉태규로 DJ가 교체되며 '아침창'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 또 다른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도 최화정이 하차해 '최파타'라는 이름을 잃었다. 비록 최화정이 방송사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 둘 시점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오랜 청취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MBC에서는 무려 반백년 넘게 51년 동안 방송을 이어온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가 폐지됐다. DJ 하차나 교체가 아닌 프로그램 자체의 폐지는 충격을 남겼다. 반세기 넘는 '싱글벙글쇼'의 역사가 공고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MBC는 그 후폭풍을 대대적인 라디오 개편으로 지웠다. 당장 '싱글벙글쇼'의 후속으로는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가 신설돼 분위기를 확 바꿨다. 여기에 '별밤지기'로 사랑받으며 여전히 '레전드 DJ'로 통하는 이문세가 '안녕하세요 이문세입니다'로 새롭게 합류했다. 이 밖에도 출산으로 DJ석을 떠났던 코미디언 안영미가 '연반인' 재재가 떠난 '2시의 데이트'로 돌아왔다.
지상파 광고 시장마저 하루가 다르게 급감하는 와중에, 2020년대 이후 하향세를 피하지 못하는 국내 라디오 시장의 변화와 개편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청취자와 같은 대중에게 출연자와 프로그램의 운명이 한 발 늦게 드러나는 탓에 애청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가 부조할 뿐. 매일 같이 청취자와 DJ, 프로그램이 소통하는 라디오라는 매체의 특성상 오랜 시간 쌓아온 친밀감을 하루 아침에 떠나보내야 하니 더욱 야박하게 비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개편을 단행해야 하는 속사정은 분명했다. 특히 오랜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은 '싱글벙글쇼'의 폐지가 유독 큰 충격을 자아냈던 바. 이와 관련 MBC 라디오 김현수 국장은 OSEN에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그램 개편을 하지만 늘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잘 만들 수 없었을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등등의 아쉬움이 남는 건 PD들에게는 숙명과도 같기 때문"이라며 개편 단행에 무거운 속마음을 밝혔다.
방송사를 떠나 1973년부터 한국 라디오 방송 상징과도 같던 '싱글벙글쇼'. 이에 김현수 국장 역시 "지금은 고인이 된 허참, 송해 선생님을 비롯하여 강석, 김혜영 씨 등 대중연예계에서 큰 족적(足跡)을 남긴 전설들이 진행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사풍자'라는 장르를 개척하여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애청자들의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한 것 역시 크게 평가할 성과"라며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라며 "프로그램 역시 시대가 변하고, 이용자가 바뀌면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라고 라디오에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유튜브와 SNS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의 범람으로 지난 연말부터 특화된 장르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내부 논의를 거쳐 신규 프로그램 론칭을 준비했고, 이번에 개편을 결정하게 됐다"라고도 설명했다.
묵직한 '싱글벙글쇼'를 덜어낸 만큼 새롭게 더해질 신규 프로그램이나 신임 DJ들의 합류 당위성은 더욱 명료해야 했다. TV조선 오디션 예능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의 대박 이후 트로트 예능은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강세인 방송 시장에서 불패 신화를 써오고 있다. 이용자들 연령대가 높아지고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대중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라디오 시장에서도 트로트 전문 프로그램의 성패는 순조로울 것으로 점쳐졌다.
나아가 김현수 국장은 "음악은 라디오 방송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라며 "특히 최근 들어 세대를 아울러 '뉴 트로트'가 유행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새로운 장르가 유행하고,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방송사에는 그만큼 또 다른 길이 열리기 때문"이라며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 신설 당위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트로트 팬덤'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음악을 일방적으로 소모하기 보다 '방송사-가수-팬덤' 삼각형의 꼭짓점 역할을 해 우리나라 대중음악 산업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13년 만에 라디오 진행 부스 석에 돌아온 이문세는 설명이 필요 없는 레전드 DJ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는 영원한 "문세 오빠, 문세 형"으로 불리는 '별밤지기'다. 당장 현재 '예능 대부'로 불리는 코미디언 이경규조차 이문세의 절친한 동생으로, '별밤' 공개방송에 함께 하며 예능인 이경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바. 이에 보답하듯 이경규는 이문세가 복귀한 '안녕하세요'에 게스트로 출연해 레전드 DJ의 컴백을 드높였다.
"이문세 본인의 각오도 남다르다"라는 말에 부응하듯, 이문세는 '안녕하세요'에서 보는 라디오도 과감하게 내려놓고 라디오 본연의 듣는 매력에 집중했다. '경력직 신입'의 표본이라 불릴 정도로 그는 시작부터 흔들림 없고 안정적인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설의 귀환'이라는 청취자들의 기대에 일찌감치 부응하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안영미는 출산 후 복귀라는 점 외에도 '2시의 데이트' 단독 진행을 맡게 된 점에서 나름의 신선함을 자아낸다. 김현수 국장은 "안영미 씨가 그동안 최욱, 뮤지 등 남자 진행자와 함께 진행하다 이번에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뿜어낼 기회가 생겼다"라며 "신선하고 과감한 안영미 표 예능감이 라디오에서 잘 발현되도록, 제작진도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KBS 라디오 청취율 1위를 자랑하는 '라디오쇼' DJ 박명수는 고정 출연 중인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KBS 라디오 측에 출연료 인상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고개를 숙였다. '청취율 1위'라는 박명수에게도 MBC의 개편, SBS에서 김창완, 최화정 등의 하차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여파다.
아무리 시장이 축소되고 하향세라 할 지라도 한 번 생겨난 매체와 플랫폼의 존재 이유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라디오도 마찬가지. 그 어떤 현란한 퍼포먼스에도 음악의 본질이 듣기에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라이브 토크, '썰방' 등으로 형태만 변했을 뿐 소소한 일상에 대한 소통, 대중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소개하는 시간은 꾸준히 수요를 낳았다. 무엇보다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재난방송으로서의 가치를 위해서도 라디오는 사라져서는 안 될 불멸의 미디어다.
방송사의 존재감이 확고하고 채널간 경쟁이 우선시 되던 수년 전만 해도 한 채널의 개편은 경쟁 채널의 개편을 연이어 초래하며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개편철'도 옛말, 변화를 위한 동력조차 사치일 정도로 경쟁 채널의 변화를 선례로 참고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MBC의 라디오 개편은 나름의 과감한 선제적 조치로 비치는 상황. 떠난 '싱글벙글쇼', 돌아온 이문세로 함축되는 방향성이 2020년대 후반 혹은 그 이후까지 국내 라디오 시장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 monamie@osen.co.kr
[사진] OSEN DB, MBC-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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