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자르는 ‘일회용 인간’…이주노동자 불법파견 해놓곤
제조업 생산직 파견 불허 업종인데도
공단지역 중소제조업 불법 파견 만연
안전교육·산재보험 가입은 ‘남의 일’
“파견직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신세죠. 다쳤다고, 물량이 줄었다고 문자메시지로 바로 잘려요. 퇴직금도 못 받고 산재 처리도 안 되죠.”
2년 전 귀화한 중국동포 40대 김아무개씨는 인천 부평공단에서 5년째 파견노동자로 제조업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다. 일감이 있을 때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는 방식이다.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서도 수차례 썼고, 일하는 곳도 자동차부품업체, 도금업체 등으로 여러번 바뀌었다.
그에게 지난 24일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해 모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참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김씨는 26일 한겨레에 “예전에 도금공장에서 일할 때 도금액이 눈에 튄 적이 있었다. 치료도 내 돈으로 받았는데, 3일 동안 아파서 못 나간다고 하니 잘렸다”며 “이번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도 저랑 비슷한 처지일 텐데 법은 있으나 마나”라고 밝혔다.
공단지역에서 중소 제조업체의 ‘생산직 파견’은 수년 전부터 고질적인 문제였다. 파견노동은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으면서, 다른 업체(사용사업주)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뜻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을 금지하고 형사처벌하지만, 구인구직 누리집에 제조업 생산직 채용공고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올 정도로 불법은 만연하다. 파견업체들은 통근버스를 운영해가며 파견노동자들을 공단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특히 내국인들의 중소제조업 기피가 심해지면서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이 불법파견으로 자리를 메우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의 김용철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노동상담소장은 “기술 기능직은 직접 고용하기도 하지만, 단순 생산직은 이제 파견직 고용이 대세”라며 “채용 등 인사노무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파견업체가 책임지니 리스크를 외주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험의 이주화’가 널리 펴져 있는 셈이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업체가 일감이 없을 때 노동자를 바로 해고하는 ‘노동 유연성’은 노동자의 권리 침해와 맞닿아 있다. 임금체불이나 4대 보험 미가입, 산업재해, 부당해고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의 2020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파견노동 경험이 있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58.9%가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일을 그만둔 이유로 ‘낮은 임금 때문에’(15.4%), ‘일이 힘들어서’(11.9%) 등의 응답과 함께 ‘그냥 나오지 말라고 해서’(16.8%), ‘소개받은 조건과 실제 노동조건이 달라서’(11.1%) 등도 만만치 않았다. 박재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센터장은 “애초 파견시장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나 고령 내국인”이라며 “특히 이주노동자는 한국어도 익숙하지 않아 문제 제기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파견노동자에게 작업장 안전보건 교육이나 산재보험 가입 역시 먼 얘기다. 이번 참사에서 파견노동자들은 대피경로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 피해가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들을 고용한 메이셀은 노동자들을 산재보험에 가입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는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김씨 역시 “그냥 현장에 투입됐고,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노동자 파견업체에서 일한 ㄱ씨는 한겨레에 “당장 일하기 바쁜데 안전 교육이나 화재대피 교육 같은 것을 할 시간도 없다”며 “파견업체 대부분이 산재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 치료비가 많이 들 경우만 산재보험 처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정부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그동안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노동계는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해왔다. 이대우 금속노조 전략조직국장은 “금속노조 차원에서 수년 전부터 공단지역 불법파견업체를 고소·고발했지만 노동부·검찰이 무혐의·약식기소에 그치는 등 안일한 대응을 해왔다”며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계속 눈감는다면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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