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극으로 치닫는 사회··· 민주주의 후퇴 어떻게 막을까”[2024 경향포럼]
민주주의 후퇴와 붕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혐오가 극심해지는 가운데 인권과 평등처럼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지던 가치와 규범들이 점점 빛을 잃고 있다. 대립을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반대 세력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세력 간 극한 대립과 분열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세계를 지탱해온 기존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다자주의에 근간을 둔 글로벌 협력 체계마저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상생할 수 있을까.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에밀리아 팔로넨 핀란드 헬싱키대 정치학과 교수,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분열의 시대, 다양성과 포용이 희망이다’를 주제로 열린 <2024 경향포럼> 3세션 토론자로 나서서 이에 관한 심도 있는 해설과 제안을 내놓았다. 진행은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토론자들은 이번 포럼의 문제의식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 양극화와 분열로 세계 각국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에 동의한 것이다. 팔로넨 교수는 “두 개의 세력이 존재하고, 이들 사이에서 양극화·극단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전 세계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뭉크 교수도 “현재 미국의 양당은 모두 ‘우리만이 정당하다’고 얘기한다. 이들이 합의하는 분야는 점점 적어지고 있다”며 “미국 정치인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서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열의 틈을 비집고 등장한 포퓰리즘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우선 옌 원장은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먼저 나타난 서구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중국 등 여러 개발도상국에서도 포퓰리즘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지만, 그 근원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옌 원장은 앞서 발표에서도 “민주주의 국가 내 양극화로 포퓰리즘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정치적 의견은 더 분열되고 시민·정당·정치단체 간 간극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 현상은 세계화로 인해 더 심화된 경향도 있다”며 “포퓰리즘이 그래서 더 모멘텀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팔로넨 교수는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반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치권이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은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포퓰리즘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인종차별이 동반될 수도 있다”며 “지나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뭉크 교수는 “특정 정치인이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포퓰리즘”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적인 전략 중 하나”라고 봤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전략 중 하나라는 취지다.
이 교수는 한국 포퓰리즘의 독특한 특성 중 하나로 ‘팬덤 정치’를 뽑았다. 특정 엘리트나 특정 개인에 대한 선호를 상정하고 무비판적으로 응원·지지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권자들 사이에선 이념적 양극화를 넘어서 정서적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치인 간 포퓰리즘을 넘어서 (서로 다른 정치인·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서로를 게토화하려는 시도도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고도 했다.
토론자들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할 방법도 고민했다. 다양성과 포용이란 가치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팔로넨 교수는 “물리적인 공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포용적인 한 공간에 모여 서로 얘기하면 온라인상으로는 회피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실제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옌 원장은 “중국에선 ‘다양성과 다양한 의견이 필요한가’ 아니면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하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고 했다. 다양성을 무조건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옌 원장은 “다양성을 추구하면 분명 비용은 더 높게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효율성만 추구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며 “(결론적으로는) 유교가 말하는 중도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이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추구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꼬집었다. 유럽 같은 경우엔 다당제를 선택해 다양성과 포용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고, 미국에선 대통령이 상대 당 의원들과 어느 정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한국에선 이러한 일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로 각자도생 시대로 접어들면서 포용은 사라졌고, 다양성은 확보되지 않는 전환점에 와 있는 것 같다”며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치제도나 정당체제에 있어 다양성이나 포용성을 확보하기 좋진 않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만큼 잘 고민하면서 (다양성과 포용을 어떻게 적용할지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재의 위기를 젊은 세대들이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여러 전망이 나왔다. 옌 원장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젊은 세대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들어야 한다”며 젊은 세대들에게 주도권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냉전세대가 아직 기득권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젊은 세대와 다르다”며 “우리는 과거를 대변하고, 미래 세대가 미래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로넨 교수도 “최근 (선거) 양상을 보면 젊은 세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그는 “젊은 여성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선출되고 있는데, 이들이 기후변화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서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기후변화 등 문제에 관심을 쏟는 만큼 이들이 미래에 대한 우려를 피력하는 모습에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대를 걸 수는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다. 뭉크 교수는 “유럽 서구권에선 1960년대부터 젊은 세대가 우릴 구원할 거라는 말이 나왔지만, 지금을 보면 50년 전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5년 전 녹색정당의 지지층 중 35%가 젊은이들이었는데 올해 녹색정당은 25세 미만인 사람들에게 받은 표가 11%로 떨어졌다. 오히려 젊은 층이 우파로 더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증진하려면 특정 세대가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의 구성원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선 젠더갈등, 세대갈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면서도 “최근 조사결과들을 보면 젊은 층은 일본에 대한 생각이 40대 이상과 달라 한국의 정치나 외교안보적인 태도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또 그는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전통적인 정치 양극화 문제였던 지역주의가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서 약화되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이 부분에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지역주의가 새로운 세대에서 풀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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