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공장의 옥상에 노동자들이 있는 이유 [왜냐면]

한겨레 2024. 6. 26. 1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씨가 지난 1월10일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집하장 옥상에 올라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소현숙 |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원래 난 주어진 일만 하며 그럭저럭 세상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회사(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주말에 나오라고 하면 나갔고 잔업을 시키면 잔업했다. 개인적인 약속도 자주 취소하고 일하던 평범한 사원이었다.

2022년 10월4일, 경북 구미의 공장에 불이 났다. 본사인 일본 니토(NITTO)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회사쪽 말에 엄마 기다리는 아기마냥 얌전히 기다렸다. 그런데 회사는 갑작스럽게 구미 공장 청산과 협박에 가까운 희망퇴직을 모든 노동자에게 문자로 통보했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사원들은 성실하게 회사를 위해 근무했는데 회사는 어째서 우리의 고용을 책임지지 않을까?’였다. 회사는 구미 공장 물량을 경기 평택 공장으로 옮겼고 신입 사원을 30명이나 채용했다. 그런데 망연자실하게 불탄 공장을 바라보고 있는 구미 노동자는 왜 내버려 두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간 기다려 달라고 했던 건 설마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직원들에게 거짓말한 건가? 회사에 헌신해 온 우리를 쉽게 버리려고?’

평택 공장에 사람이 필요하다면, 구미에서 고용 승계를 원하는 직원들을 데려가는 게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는 구미 직원은 안 된다고만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투쟁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회사는 매일 적자로 힘들다고 사원들에게 하소연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많은 돈을 일본 본사로 보내고 있었다. 사원들 월급은 동결시키거나 10원 단위로 올려주면서 매년 배당금을 200억원이 넘게 꼬박꼬박 보냈다. 그동안 회사가 한 거짓말과 배당을 알게 되자, 기가 찼다.

투쟁을 시작하고 안 가본 곳이 없다. 구미시청, 산업단지공단관리본부, 노동청, 평택 니토옵티칼, 일본에 있는 니토 본사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서 청산의 부당함을 알리고 직원들의 구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법적으로는 회사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때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니토의 일방적 청산과 부당해고에 맞서 시민 선전전을 진행했고, 동지들에게 연대를 요청했다. 동지들은 자기 일처럼 달려 와주었고, 조합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자본의 침탈 시도에 맞서 불타버린 공장에서 함께 싸워주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회사의 요청으로 수도사업소가 노조 사무실에 갑자기 단수 조치를 했다. 당장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하는 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여기 사람이 있는데 갑자기 물을 끊어 버리다니…. 서러웠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건데, 공권력은 노동자를 싫어하는 것 같다. 구미시청은 외국인투자기업 유치에만 관심 있고 노동자들이 거기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일하든 관심도 없고, 부당해고를 하든 일방적으로 청산하든 상관없는 거 같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더 막 나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올해 1월8일, 정말 추웠다. 새벽에 집에서 나오면서 ‘아 오늘은 춥네. 지회 가면 난로부터 켜고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회사 앞에 왔는데, 용달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옵티칼 맞죠?” “누구세요?” “우리 여기 철거하러 왔어요.”

소름이 끼쳤다. 이 새벽에 철거하러 왔다니. 지회로 달려 들어가서 철거업자들이 온 것을 알린 후 나는 급하게 짐을 꾸렸다. 무작정 출하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야만 했다. 이렇게 내몰리듯 쫓겨날 수는 없었다. 박정혜 수석 부지회장도 올라왔다. 둘이서 찬바람 부는 새벽에 벌벌 떨면서 텐트를 치고 옥상을 정리했다. 바람이 매서웠다. 고용승계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 쇠사슬도 걸었다.

11명의 노동자가 옥상에 올라온 지 오늘로 169일(6월24일 기준). 그동안 회사는 남아있는 조합원에게 손배가압류를 걸고 가처분 강제 집행을 했다. 조합원과 그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각오했음에도 막상 닥치니 화가 치밀었다.

더욱 화가 나는 건 회사가 보내는 문자들이었다. ‘가족을 생각해라’ ‘나중에 후회한다’ ‘왜 더 말리지 않았냐고 원망하지 마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기 전에 생각이란 걸 했으면 좋겠다. 이런 문자 받고 그만둘 거였으면 시작도 안했다. 옵티칼 조합원은 니토의 사과를 받고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