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 아저씨를 추억하며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초여름이면 우리 집에서 누리는 소박한 호사가 있다. 딸기를 따서 산양유를 부어 먹는 일이다. 이 딸기는 작지만 속까지 빨갛고 향이 강하다. 이 딸기는 내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 있었다. 60년 전에 해리 홀트라는 분이 미국 오리건에 있는 자기 농장에서 모종을 가져와 나의 아버지께 주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 딸기 종자를 보존했다. 아버지는 딸기철이 되면 이 딸기를 설탕에 재워 차가운 우유를 부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걸 무던히 좋아하셨다.
우리가 지금의 자리로 농장을 옮길 때 남편은 이 딸기를 몇포기 가져와서 심었다. 해마다 이 딸기를 딸 때면 홀트 아저씨 생각이 난다. 차에서 내려 어린 나를 꽉 끌어안고 따갑게 볼을 비비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는 오리건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목재상과 제재소도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은퇴하면 좋은 요트를 사서 대양을 누비며 여생을 보낼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심장마비가 왔다. 죽음을 느꼈을 때 그는 자기와 가족만 챙기다 죽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살아나면 남을 도우며 살겠노라고 하나님께 서약했다.
기적처럼 살아난 그는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다가 6·25 전쟁고아들의 참상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8명의 전쟁고아를 입양하여 데려갔다. 현장에서 고아들의 참상을 본 그는 그 뒤에도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자기 재산 모두를 팔아 마련한 40만달러를 들고 한국으로 다시 날아왔다. 나의 아버지와 홀트의 어머니는 같은 기독교 교단(Bretheren Assembly)에 속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한국에 가면 나의 아버지를 만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난 그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도 그대로 돌아섰다고 한다. 미국인을 만나면 무언가 덕 볼 일이 없나 하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으니 홀트는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 한명으로 본 것 같다고 했다.
몇년이 지난 뒤 홀트는 미국에서 가져왔던 돈도 다 떨어지고 몸마저 병들었다. 그는 나의 아버지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홀트는 진심으로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힘껏 도울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아이들 먹일 양식이 떨어졌다고 홀트가 걱정하면 아버지는 당신 농장에 와서 고구마를 캐 가라고도 했다. 그는 영양실조인 아이들을 살리려고 미국에서 유산양을 가져와 아버지께 길러달라고 맡기기도 했다. 다른 보육원에서 맡지 않으려 하는, 신체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이들을 홀트는 모두 받아들였다.
일산의 시설이 부족한 것을 알고 아버지는 우리 집 위쪽에 흙집 두채를 짓고 그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그 집에 가서 아이들을 업어주며 놀았다. 그 예쁜 아이들이 지적 장애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특히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다. 홀트의 아들은 오리건에서 농장을 이어받아 농사를 짓고 있었다. 돈에 쪼들리자 홀트는 아들의 트랙터를 팔았고, 트랙터를 뺏긴 아들이 눈물을 흘리더라고 홀트가 나의 아버지께 말했다는 이야기다.
전쟁고아들을 위해 그리 애쓰던 홀트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에 묻혔다. 그의 사위가 미국으로 운구하겠다는 것을, 나의 아버지는 홀트는 자기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들 옆에 묻히고 싶어 할 거라고 했고 부인 버사 홀트가 동의했다.
홀트의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추도사를 했다. “홀트 이 사람은 학교 교육이라고는 5년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전 재산을 팔아 가지고 온 돈은 40만달러였습니다. 개인에게는 큰돈이지만 큰일을 하기에는 적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홀트는 그 적은 지식, 적은 돈, 짧은 생애를 전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그 보잘것없는 것들은 고아들을 위해 크게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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