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주의 발상인 ‘광화문 100미터 태극기’ 부적절하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 초대형 국기 게양대를 설치할 계획을 공개했다. 오세훈 시장이 지난 25일 6·25 참전용사 간담회에서 내놓은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의 일환이다. 2026년 2월까지 약 110억원 예산을 들이는 사업이다. 이 구조물이 세워진다면 정부서울청사 등 광화문광장 내 어떤 구조물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인근 대성동 마을 게양대(99.8m)보다 높은 국내 최대 국기 게양대가 된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애국심 함양과 자긍심 고취”를 이유로 들었다.
우선 오 시장이 공개한 게양대 조감도를 보면 미학적으로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상에는 ‘과도하게 커 거부감이 든다’ ‘기괴하다’ 등 반응이 나왔다. 미학적 아름다움이 결정적 요인은 아니겠지만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깔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태극기가 가진 상징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유롭고, 개방된 소통과 만남의 공간인 시민 광장과 초대형 태극기가 어울리느냐 하는 얘기이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잡아 모든 시선을 앗아갈 이 거대한 구조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았던 군부독재의 국가주의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시민들이 자주 오가는 광장에 거대한 태극기를 매일 보여준다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태극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광장을 둘러싼 외곽 경계선인 정부서울청사 본관과 별관,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앞에는 이미 충분히 큰 태극기가 여러 개 펄럭이고 있다. 광화문광장에는 이미 많은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쉬고, 소통할 공간이지, 부담스러운 거대 상징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사업은 9년 전 박근혜 정권의 국가보훈처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추진하다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무산된 것이다. 지난달 3일 서울시의회에서 관련 조례가 국민의힘 시의원들 주도로 통과됐는데, 그 과정에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심의 등 논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오 시장이 이 시점에 국가주의 상징을 다시 소환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이번 계획을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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