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 생각하라니, 할 소리인가?"…가슴치는 '훈련병' 어머니 [스프]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2024. 6. 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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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 생각하시라" (예비역 중장 문영일 씨)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소리인가?" (박 훈련병 어머니)

얼차려(군기훈련)를 받다가 숨진 박모 훈련병의 어머니가 분노했습니다. 닷새 전 예비역 장군 문영일 씨가 '(희생자의 가족들은) 운명이라 생각하라'는 등의 글을 올렸는데요, 어머니의 가슴을 후벼판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를 향해서도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이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소리인가"

숨진 박 훈련병의 어머니는 '하나회' 출신으로 알려진 문영일 씨 글에 대해 "이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소리인가"라며 분노했습니다.

또 "장군씩이나 지냈다는 사람이 국민을 위한 희생과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도 구분을 못하는 걸 보니 사람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군의 악습이 아주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입장은 군인권센터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어머니는 아울러 "도대체 군, 경찰, 예비역 장성에 이르기까지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며 "문영일 중장의 입장이 대한민국 군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성우회의 공식 입장인지 궁금하다"고 성우회를 향해서도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이런 어머니 입장을 전하면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국민의 군대를 권력 탈취를 위한 놀이터로 만들며 깡패들 마냥 사조직을 꾸렸던 쿠테타 잔당이 위국헌신을 운운하며 군의 미래를 염려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사람들이 수십년 간 수뇌부 자리에 앉아 군을 이끈 탓으로 우리 군이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고 반복되는 사건, 사고에 속수무책인 DNA를 갖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임충빈 성우회 회장은 육사 선배이자 성우회원인 문영일의 주장이 성우회의 공식 입장인지 밝히라는 훈련병 유가족의 요구에 당장 응답하고 박 훈련병과 유가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임충빈 성우회 회장(전 육군참모총장, 육사 29기)는 육사 선배이자 성우회원인 문영일의 주장이 성우회의 공식 입장인지 밝히라는 박 훈련병 유가족의 요구에 당장 응답하고 박 훈련병과 유가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라.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문영일을 즉시 성우회에서 제명하여 진정성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 군인권센터 성명 <문영일의 '중대장 구속 반대'는 성우회의 공식 입장인가?>
 

문영일 씨 "유족은 운명이라 생각하시라"

예비역 중장 문영일 씨의 글은 지난 21일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성우회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이날은 숨진 훈련병의 중대장과 부중대장이 구속된 날입니다.


"중대장을 구속하지 말라! 구속하면 군대훈련 없어지고 국군은 패망한다"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문 씨는 "끝내, 주어진 임무 완수를 위해 노력을 다한 훈련 간부들을 군 검찰이나 군 사법체계가 아닌 민 사법체계가 전례 없이 훈련 중의 순직을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한 것에 대하여 크게 실망함과 동시에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문 씨는 중대장을 구속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로 얼차려(군기훈련)을 시킨 중대장이나 부중대장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로 "군 훈련 사고에 대한 조치는 제반 조건을 고려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면서 "훈련 중 그 모든 사고예방 조치를 다하였으나 불가항력으로 순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고귀한 희생 즉 위국헌신의 순직으로 예우하고 국가적 조치를 다하게 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얼차려 가혹행위를 훈련으로 정당화하며 중대장을 두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군인권센터의 적대적 국군관"을 거론하며 군인권센터를 비난했습니다. "군인권센터라는 이상한 조직이, 마치 문재인 정권 시절 청와대 어느 경제관이 '재벌을 손볼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군대를 손보고 통제할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출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군을 적대시하며 이 사건에 개입해 어느 시정 사이비 반군단체보다 앞서 폭로성 보도자료를 남발하며 위국헌신하는 중대장의 위신 즉, 국군 간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군인권센터를 겨냥했습니다.

숨진 박 훈련병이 입영 당시 어머니를 업고 있는 모습. 사진 : 군인권센터 제공


유족에게 남기는 글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 나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우선 혈육지정으로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난감하기 그지없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운명이라 생각하시고, 그 부대 전원과 국군 전부가 그리고 국가가 위로해 드림을 받으셔서 한동안의 실망을 극복하시고 위국 헌신하여 국군 충혼 전당에 서실 순직 용사를 보아 주시기를 전체 국민은 기도 드릴 것입니다"

군인권센터는 패륜적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논란 확산되자 문 씨 글 삭제돼

문 씨의 글이 온라인에 퍼지자 누리꾼 사이에서 찬성보다는 성토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2차 가해를 중단하라", "유가족에게 운명이라 생각하라는 말이 마치 사이코 패스 같다", "훈련병 죽이는 게 위국헌신이냐", "지난 세월 국군의 인권의식이 비정상이었고,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려고 하는 것", "하나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등의 비판 댓글이 달렸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문 씨의 글은 삭제됐습니다.

문영일 예비역 중장은 육사 14기(89세)로 전두환 등이 주도한 육군 사조직 '하나회' 출신이라고 군인권센터가 전했습니다.

제7공수여단장과 1군 사령부 부사령관, 국가안보회의 국가비상기획위원회 부위원장, 군사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박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얼차려를 받다 쓰러져 민간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틀 만인 25일 사망했습니다.

얼차려를 실시한 중대장과 부중대장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지난 21일 구속됐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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