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태어난 월드비전…받은 사랑 나누고 있죠"
6·25 전쟁 직후 태어나
후원자 도움으로 미국 유학
에이즈 세계최고 전문가로 성장
이젠 후원단체 회장에 올라
"전쟁과 난민생활 아이들 취약
학대·인신매매서 보호해야"
한국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50년 9월, 한경직 목사와 미국의 밥 피어스 목사는 굶주리고 고통받는 한반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월드비전을 설립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월드비전은 70여 년 후 100여 개국에서 연간 4조5000억원 규모의 후원사업을 진행하는 세계 최대 아동 후원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 원조를 받는 나라였던 한국은 이제 후원을 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6·25전쟁이 끝난 지 3년, 서울 금호동 달동네 판잣집에서 실향민 부부 사이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교회 장로의 도움으로 이 아이는 미국의 한 후원자와 인연을 맺었다. 후원을 받던 아이는 이제 후원단체의 수장이 됐다. 6·25전쟁 74주년을 앞두고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조명환 한국월드비전 회장은 "과거 우리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지원을 이제는 전 세계에 나눌 차례"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세계적인 에이즈 전문가다. 건국대 미생물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면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을 맡으며 가난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대규모 모금을 진행하기도 했다. 모교인 건국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바이오 벤처회사를 창업해 운영한 경험도 있다.
조 회장은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던 제가 꿈이란 걸 꿀 수 있었던 건 후원 덕분"이라고 말한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원조를 끊지 않은 후원자의 사랑이 그를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중에 알게 된 저의 후원자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25년간 초등교사로 근무하다 은퇴 후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평범한 분이셨다"며 "제가 성장해서 교수가 됐을 때까지 45년간 매달 15달러와 편지를 보내주셨다"고 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후원의 의미를 월드비전 회장이 된 후에야 알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도중에 후원이 끊겼다면 아마 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었을 거예요. 제가 후원아동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조 회장은 자신이 후원아동에서 후원단체 회장이 된 것처럼,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후원을 받던 한국이 현재는 어려운 나라를 돕는 국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약 60만명의 후원자가 한국월드비전과 함께하고 있다"며 "지난해 기준 후원금 규모는 3400억원으로 전 세계 100개 월드비전 회원국 중 네 번째로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70여 년 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세계 곳곳엔 전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난민과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음식이나 깨끗한 물, 주거 공간 등 기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졌다"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은 질병에 취약한데 의료서비스는 태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회장은 "특히 아이들은 전쟁과 난민생활 중에 착취, 학대, 인신매매 등의 위험에 가장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보호 조치를 통해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의 역할은 자연재해나 분쟁 발생 시 긴급구호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조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인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며 "아동이 사는 지역을 변화시켜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조 회장은 이러한 월드비전의 활동은 시민들의 관심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아 우리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며 "과거 우리가 받았던 사랑과 지원을 이제는 우리가 전 세계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을 넘어 희망과 미래를 선물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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