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규모 韓 20배' 실리콘밸리로···"본격 유출은 이제 시작"
1부. 미래 안보이는 인재空화국 - <중> K두뇌 블랙홀 된 G2
美 대규모 투자로 기회의 문 활짝
2030년엔 현지인력 6.7만명 부족
高연봉·유연한 근무환경도 한몫
외국인 인재 유입정책 필요성 제기 중>
우리나라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한국을 추격하는 중국으로 건너가 기술까지 유출하고 있다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더 넓어졌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일본 등 기술 패권을 노리는 국가들도 한국 인재들을 흡수하기 위해 스카우트 제의를 하고 있다. 높은 연봉과 유연한 근무 환경, 우월한 현지 기술 인프라 등에 끌려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범진욱 서강대 교수는 26일 “진짜 인력 유출은 시작되지도 않았다”며 “중국으로 갈 때는 심리 장벽이 있지만 미국은 그런 것도 없다. 인력 유출의 본격적인 시작은 2~3년 후로 본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반도체 인재들이 외국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중요한 이유로는 연봉 상승이 꼽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일할 때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빅테크’ 기업들에서 일할 때가 1.5~3배 정도 더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취업 기회가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엔비디아·퀄컴·브로드컴·AMD 등 세계 팹리스 1~4위 기업들뿐 아니라 구글·메타·애플 등 자체 칩 개발에 적극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보니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국내보다 풍부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반도체 설계는 물론 제조·생산까지 거머쥐려는 미국이 수백조 원을 투입하면서 기술 인재들에게 기회의 문은 더 넓어졌다. 미국 현지에서는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TSMC 등 칩 메이커들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2030년이 되면 현지 반도체 인력이 6만 7000명이나 모자랄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의 규모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초라하다는 점 또한 고급 인재들이 해외 이직을 택하는 주요 원인이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이 문제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미국 점유율(70%)의 2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위상이 한풀 꺾인 점 역시 국내 인력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의 신화를 쓴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스템반도체 설계 등에서 주춤하면서 해외 노크가 더 늘고 있다는 것이다. TSMC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대만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회사에 남아 있는 옛날 방식의 경직된 의사 결정 과정이 외국 기업들의 근무 환경과 비교되기도 한다”며 “일부 국내 반도체 인력들이 외국 기업으로 이직한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 부족에 고급 인재의 유출은 결국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 관계자의 40.4%가 국내의 인력 부족 현상으로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R&D)에 큰 차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인력들이 국내 생태계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정책과 조직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도체 설계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일하는 자국의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연봉의 절반을 나라에서 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리턴’을 유도한다”며 “외국의 우수한 인프라를 경험한 인재들이 한국으로 온다면 오히려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력 유출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 만큼 외국의 인력을 유입할 만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입하는 것”이라며 “이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방법 등으로 우수한 정주 환경을 마련해주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노우리 기자 we1228@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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