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를 위해` 한마디 삽입에 엇갈린 경제계
찬성 "韓 디스카운트 해소에 필수
이사의충실의무 대상 확대해야"
반대 "최고수준 상속세 등 원인
이사의 혁신적 활동 기대 어려워"
정부가 기업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을 놓고 각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이 첨예해지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 전반으로 확대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한다는 취지지만 기업 입장에선 장기적인 발전 저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상법 개정 의견 수렴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주권상장법인에 대한 특례'(자본시장법 제3장의 2)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명시하는 법조문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던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위해'라는 문구를 삽입, 상장회사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손실 여부도 모두 검토했는지 법적인 절차를 명시한다는 게 요지다.
◇"장기 발전 저해"= 경제계가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로 제시하는 가장 큰 우려 사항은 '기업 발전 저해'다. 기업들의 신속한 경영판단이 어려워지고 이사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소송과 사법 리스크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 환영사에서 "이번 상법 개정이 장기적 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영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헤지펀드나 행동주의펀드 같은 경영권 공격 세력들에게만 유리한 수단이 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기업 측은 상법 개정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강조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본부장은 "기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이 나오지 않은 개인 투자자의 감정적 호소가 정책이 되면 상당한 부작용이 될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도한 상속세와 국내 증시가 MSCI 선진지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개별 기업 입장을 대변한 정인철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도 "지배구조를 논하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는 그동안 경영진이 가진 방향성이 소액주주들과 충분히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 책임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에 대해 "큰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도한 민사책임으로 이사의 혁신적 경영활동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회사의 이사책임 보상계약제도 도입, 회사의 피고측 소송참가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지난 24일 상법 개정과 관련해 정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필수적"=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사모펀드는 강성부 KCGI 대표는 작심발언을 했다. 그는 이사 충실의무의 확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사의 충실의무 바꾼다고 호들갑인데 해보지도 않고 호들갑을 떤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한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와 이사의 배임 면책권 이야기를 하면 되겠나"라며 "불 끄라고 소방수를 투입했더니 오히려 기름을 부어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는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행사로, 지난 12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다소 상반된 논조의 주장이 나온 바 있다.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지배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사익을 편취하는 행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비롯해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 임원보수와 내부거래의 주주통제 강화, 기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 역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 적용하고,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하는 등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 측이 우려하고 있는 우려하고 있는 주주와 회사간 이해 충돌에 대해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이는 이번 개정의 규율 대상이 아니라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 부의 이전 우려가 없는 일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인 신규투자, 인수합병 등은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도 세미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이든 자본시장법 개정이든 개정안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세미나에 앞선 축사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도 이 원장은 "금감원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서 입장이 명확하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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