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이라던 '하이라키'의 주인공 이채민은 왜 '난닝구'를 입었는가?
[엔터미디어=수사연구 박기자의 TV탐정] 넷플릭스 드라마 <하이라키>에서 세계적 히트작 스페인드라마 <엘리트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강의 명문고를 배경으로 상류층 학생과 사회적 배려계층 학생들의 계급적 갈등, 그리고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치명적이고 섹슈얼한 분위기.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진범을 찾아가는 플롯의 방식 등등.
<하이라키>는 부유층만 다니는 명문 주신고에 입학한 평범한 장학생 강하(이채민)가 쌍둥이 형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는 플롯이다. 여기에 <하이라키>는 <엘리트들> 같은 치명적이고 섹슈얼한 분위기까지 도입하려 애쓴다. 강하, 김리안(김재원), 장재이(노정의)는 모두 눈에 힘을 주거나 힘을 풀고 나른하고 치명적인 분위기로 대사를 친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잘 못 만드는 분위기 중 하나가 치명적인 정서다. '오그라듬'의 정서를 못 견디는 국민성도 있고 실제 '치명적' 분위기를 코믹하게 만드는 데 오히려 더 탁월하다.
당연히 한국 시청자들은 <하이라키>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기보다 옷자락을 잡고 화면을 보며 항마력 수련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한국드라마의 특성상 수많은 남녀배우의 찌찌파티 궁디파티가 기본인 <엘리트들>과 달리 <하이라키>는 수위 조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이라키>의 첫 회에서 겉옷을 망친 장재이는 강하에게 흰 와이셔츠를 빌려달라고 한다. 사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이어지는 긴장감 넘치고 약간의 에로틱한 분위기도 흐르는 장면이다. 이때 고민하던 강하는 와이셔츠를 벗는다. 그의 근육질의 맨몸 대신 드러나는 것은 그가 입고 있는 '난닝구'다.
<하이라키>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첫 회에서 본 '난닝구'를 입은 강하의 모습과 비슷하다. <엘리트들>이 성공했던 그 요소들을 가져오고는 싶지만 결국 우스운 가림막이 필요했다고나 할까?
물론 <하이라키>가 <엘리트들>에 비해 빼어난 점도 있기는 하다. <하이라키>는 특히 '학폭'장면에서 있어서는 <엘리트들>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학폭 특유의 폭력성만이 아니라 그 전반에 흐르는 비열함과 '꼽'주는 정서들을 굉장히 잘 살려낸다. 여기에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끼 남주원(서범준)의 해킹과 SNS 협박 장면들 역시 그럴싸하다. 어찌 보면 가장 한국적인 방식의 폭력이기에 가장 잘 살려낸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또 <하이라키>의 노정의와 김리안, 혹은 노정의와 강하가 만들어가는 로맨스 분위기는 나름의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한국 로맨스물은 치명적인 장면은 못 만들지만 알콩달콩한 장면을 만드는 데는 장인급의 노하우가 있다.
노정의와 김리안 뒤에 있는 재벌가 집안의 드라마 역시 스케일이 크다. 한국 드라마 속 재벌가에 대한 익숙한 재현이지만, 드라마의 화려한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는 했다고 본다.
다만 이 많은 요소에도 불구하고 <하이라키>는 썩 재밌는 드라마는 아니다. 특히 눈에 독을 품은 강하는 어느새 짝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독이 풀려 질질 끌려다니는 착한 남자가 됐다. 김리안 역시 진짜 나쁜 놈이 아니라 장재이의 말 몇 마디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이쪽이야말로 댕댕이 같은 악역이었다.
<하이라키>는 초반에 보여주고 싶은 독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면 사실 좀 더 강하거나, 못 되거나.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 하지만 익숙한 방식의 장면들로 중반부부터 갈등을 봉합하면서, 결국에는 도도하고 까칠한 <하이라키>보다 '난닝구'가 어울리는 착하디착한 순정남들의 드라마가 됐다.
<엘리트들> 정확히는 <엘리트들> 시즌3까지가 많은 호평을 받은 건, 자극적인 분위기에서도 흔들리는 10대만의 정서, 인종, 계급, 가족, 성정체성의 문제 등 심각한 이슈를 그 안에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하이라키>는 그런 10대의 정서에 대한 관심보다는 드라마를 팬시한 하이틴물 상품처럼 만드는 데 주력했다는 인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이라키>가 딱히 팬시한 느낌이 강하게 남은 것도 아니다지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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