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중동 정세 속 이란 대선···‘강경 일색’ 대외정책 미칠 영향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른바 ‘저항의 축’ 세력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는 가운데 28일(현지시간) 이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지난달 19일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보궐선거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상대방의 본토를 겨냥한 공격을 주고받았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이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 세력과 이스라엘의 확전 가능성이 커지는 등 엄중한 대외 환경 속에 선거가 치러진다. 그러나 선출직인 대통령보다 비선출 ‘최고지도자’가 권력서열 1위로 우위에 있는 이란에서 이번 대선이 이란 대외 정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고지도자 아래 대통령…권력 구도 영향 없어
이슬람 신정 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에 이어 권력 서열 2위다. 군 통수권과 행정, 사법 결정권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현 이란 권력 구도 변화에 큰 영향은 없다.
다만 이번 선거는 차기 대통령 자체보다 85세 고령인 하메네이의 뒤를 이을 최고지도자 후계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은 최고지도자 계승 1순위로 꼽혔던 인물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란 강경파 내에서 후계자 자리를 놓고 물밑 경쟁이 촉발됐다.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 검증 및 자격을 부여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압축한 후보 6명 가운데 5명은 하메네이 충성파로 분류되는 보수 강경파들로, 이들 중 누가 당선되든 라이시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반미·반이스라엘 강경 노선엔 변함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라이시 재임 당시 이란은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에 군사적으로 맞서 왔다. 지난 4월에는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파에 대응해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하기도 했다.
이란 내부적으로는 2022년 시작된 ‘히잡 시위’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자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는 등 초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견지해 왔다.
등 돌린 민심…투표율, 또 떨어질까
지정학적 위기와 내부적인 불안 요소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투표율도 관심사다. 최근 몇 년간 이란의 주요 선거에서 투표율은 지속해서 하락해 왔다. 2013년 대선 당시 76%였던 투표율은 2017년 70%, 2021년 49%로 곤두박질쳤고, 가장 최근 치러진 지난 3월 총선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인 41%를 기록했다. 서방의 제재 강화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 히잡 시위 폭력 진압 등으로 고조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이란은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가 후보자를 사전에 거른다는 점에서 선거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도 헌법수호위원회는 80여 명의 출마자 가운데 여성과 급진 개혁파 정치인 등을 대거 탈락시켰다. 최고지도자 중심의 통치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후보들은 애초에 배제하는 것이다.
최종 후보로 승인된 6명 가운데 이례적으로 온건 개혁파 후보가 1명 포함된 것을 두고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핵 합의 복원과 및 서방과의 관계 개선, 여성 인권 증진 등을 내건 개혁 성향의 마수드 패제시키안 후보를 일종의 ‘바람잡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메네이는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도 공개 지지하지 않았으나, 투표를 사흘 앞둔 25일 TV 연설을 통해 “미국의 호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가를 잘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페제시키안을 공개 저격했다.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최고지도자 보좌관인 야히아 라힘 사파비는 “최고지도자와 충돌하지 않는 견해를 가진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면서 “국민은 자신을 이인자로 여기고, 분열을 만들지 않는 대통령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 3인 각축전…강경파 당선 가능성 커
최근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선 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으로 현 국회의장인 강경파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후보, 핵 협상 수석대표를 지낸 외교관 출신으로 역시 강경파로 분류되는 사이드 잘릴리 후보, 보건부 장관을 지낸 개혁파 페제시키안 후보 3인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이란 전문가들은 차기 대통령으로 하메네이에 순종적인 강경파가 당선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하메네이 후계 선정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할 가능성이 큰 만큼 충성파가 낙점될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는 페제시키안이 이란 정치권에서 소외됐던 ‘개혁파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강경 보수파 후보들까지 경제난과 부정부패,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정부 비판에 가세한 것은 개혁파의 선거 캠페인에 맞서 등 돌린 민심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개혁파가 선거 캠페인을 뒤흔들면서 보수파 내부에서 표 분산을 막기 위한 후보 단일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선거 직전까지 후보자 간 합종연횡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동 분석가인 사이드 자파리는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보고서에서 “페제시키안이 이번 대선의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유권자의 무관심과 낮은 인지도, 투표율이 그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짚었다.
페제시키안이 2차 결선 투표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28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내달 5일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전직 국회의원인 자바드 아리안메네쉬는 “투표율이 낮으면 잘릴리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크고, 40~50% 수준이라면 갈리바프가, 55% 이상이면 페제시키안이 유리하다”고 FT에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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