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문학상] '번아웃' 빠진 박수무당, 그의 앞집에 신애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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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차원이 남다른 소설이다.
칼을 그어도 피가 나선 안 되는데,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굿판에서 피가 흘러 큰 망신만 당했다.
부채와 방울을 들고 신령님을 기다리는 문수, 그러나 할멈은 한 마디 말도 없다.
이 소설은 무당과 신애기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이 시대의 '진짜와 가짜'를 도발적으로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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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혼모노'
무당과 신애기 싸움 통해
세대갈등 묘사한 수작
독특한 소재로 눈길 잡아
◆ 이효석 문학상 ◆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차원이 남다른 소설이다. 짧은 분량임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한 점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마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주인공 문수는 30년 경력의 50대 박수무당이다. 그는 장수할멈을 모신다. 그러나 요즘 들어 '신빨'이 영 신통치가 않다. 무당 문수에게도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이 온 걸까.
어느 날, 앞집에 20세쯤 됐을까 싶은 어리고 예쁜 신애기(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가 점집을 차린다. 터가 센 골목이라 무당들이 자주 드나들었지만 몇 달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 보인다. "우리 애 잘 부탁드린다"며 부모와 앞집 신애기가 찾아왔는데, 신애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장수할멈이 점지해줬어. 네놈 앞집에 들어가라고.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 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아뿔싸, 할멈이 허락했던 신기가 자꾸 떨어졌던 게 그 때문이었나. 칼을 그어도 피가 나선 안 되는데,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굿판에서 피가 흘러 큰 망신만 당했다. 일생을 장수할멈을 모시는 무당으로 살아왔는데, 내 인생의 멘토 할멈이 떠나다니. 할멈이 정말로 신애기한테 붙어버린 걸까. 초년 시절부터 문수를 찾아와 '형님' '아우님' 했던 국회의원 황보 녀석조차 문수가 아닌 신애기한테 굿을 맡겼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부채와 방울을 들고 신령님을 기다리는 문수, 그러나 할멈은 한 마디 말도 없다.
이제 작두를 타야 한다. 명예를 건 실전, 아니 무당으로서의 명운이 이날 굿판 하나에 달려 있다. 할멈이 오지 않는다면 박수무당 문수의 인생은 마침표다. 문수는 박수무당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일본어 제목 '혼모노(ほんもの)'는 '진짜'라는 뜻이다. 반대말 '가짜'는 '니세모노(にせもの)'라 부르는데, 여기엔 선무당이란 뜻도 담겼다. 누가 혼모노이고 누가 니세모노인가, 누가 선무당이고 누가 진짜 무당인가를 소설은 묻는다. 이 소설은 무당과 신애기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이 시대의 '진짜와 가짜'를 도발적으로 질문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갈등은 따지고 보면 '세대 갈등'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칠성작두에 올랐을 때 그 싸움의 승부처는 '누가 더 오래 버티나'였다. 그건 단지 일자리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 증명'이 걸린 단 한 번의 굿판이다.
그런 마음의 문수에게 신애기는 말했다. "추하다"고.
"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네. 늙은 게 아니라 야심만 가득해 흉하다고."
몸이 떨리고, 눈이 뒤집힌다. 얼굴에 흐르는 건 땀인가, 피인가.
심사위원 편혜영 소설가는 "세대 간의 문제를 이런 소재를 갖고 쓸 수 있나 싶어 읽을 때마다 인상적이었다.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완결성 있는 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정이현 소설가는 "이건 예술을 넘어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세 번을 읽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던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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