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조선백자 무더기 발굴 …'바닷속 타임캡슐' 열렸다
2020년 최초 발견 신고 후
청동기시대 마제석검부터
근대까지 유물 900여점 출수
해양유산硏 "고선박도 기대"
"수중 장비 이상 무."
"하잠(잠수하십시오)."
26일 전북 군산 선유도 선착장에서 2.4㎞ 떨어진 바지선 위. 10인승 보트를 타고 도착한 바지선은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검은 차광막이 넓게 드리워진 채 푸른 파도에 몸을 살랑이고 있었다. 바지선 두 개를 연결한 직사각형 가판 위 통제실에선 분주한 목소리가 오갔다. 정헌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잠수부 2명이 입수하자마자 교신을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수심 7m 바닷속을 비추는 영상에 기다란 목재가 잡혔다. 그토록 고대하던 고려시대 고선박의 흔적일까. 국가유산청은 이날 선유도 수중 발굴 현장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지난 4월 재개한 제3차 선유도 수중 발굴 현장이다. 선유도를 포함한 고군산군도 일대는 지금까지 유물 1만6000여 점을 쏟아낸 '바닷속 타임캡슐'로 주목을 끌고 있다. 선유도 해역은 2020년 민간 어부의 첫 발견 신고 이후 지난 4년간 탐사·발굴 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마제석검부터 삼국시대 유물, 고려청자 다발과 조선백자 등 900여 점이 출수됐다. 폭넓은 시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잠수한 지 40분이 지났을 즈음 "올라온다"는 무전기가 터졌다. 2021년 탐사 조사 때 고려청자를 무더기로 발굴한 김태연 잠수사의 손에는 영상에서 보였던 목재가 딸려왔다. 1.5m 길이로 고려시대 선박 부속구로 추정된다. 바다 벌레가 파먹은 탓인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같이 잠수한 나승아 연구원의 그물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사슴뿔과 자기 파편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이규훈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고려청자 다발을 비롯해 고선박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노나 닻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4~10월 7개월간 진행되는 선유도 발굴에는 총 8명의 잠수사가 투입된다. 2인 1조로 하루에 4번 물속 탐사를 떠난다. 날씨가 좋으면 탐사 시간은 한 번에 50분 정도. 4개의 각종 줄과 호스를 장착하고 등엔 공기통이, 얼굴엔 통신과 영상·라이트 기능을 모두 갖춘 밴드 마스크를 쓴다. 거센 물길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몸에 짊어진 총중량은 30㎏이다.
바지선 주변의 수심은 3~7m로 비교적 얕다. 김 잠수사는 "수심은 낮지만 갯벌이라서 시야가 흐려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며 "물살도 오늘은 제법 거센 편"이라고 말했다. 선유도 말고도 인근 무녀도와 신시도 등 주변에선 탐사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바지선에서 1㎞ 떨어진 곳에 잠수사와 연구사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수중발굴선 누리안호가 보인다. 누리안호는 수심이 최소 10m는 돼야 발굴이 가능하다. 이 과장은 "우리나라 수중 발굴 역사는 1970년대 신안 해저 조사를 시작으로 50년 남짓 된다"며 "신안과 고선박 5척이 발견된 태안 마도에 이어 선유도 일대는 가장 주목받는 수중 발굴 지역"이라고 말했다.
바지선으로 끌어올린 유물은 흙을 제거한 뒤 실측 후 사진 촬영을 끝낸 다음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유물과학팀에 신속히 인계한다. 앞으로 얼마나 발굴을 이어갈지는 올해 어떤 유물이 나올지에 달려 있다. 잠수사와 연구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체가 나오기를 손꼽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유도 해역은 강진과 해남 등에서 만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실은 무역선이 고려 수도가 있었던 개경과 강화도, 조선 한양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주변에 암초가 굉장히 많아 난파선이 적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1872년 만경현에서 제작된 '고군산진 지도'에는 "조운선을 비롯하여 바람을 피하거나 바람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기록됐다. 또 송나라 사신이 1123년 고려에 방문한 기록을 담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로 오는 사신이 묵었던 객관인 군산정이 있었던 곳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다.
[군산(선유도)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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