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청자·백자 다 나온 선유도 앞바다, 이젠 배를 찾아라

노형석 기자 2024. 6. 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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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고대 도시’ 군산 선유도 해역 수중 발굴 작업
26일 오전 선유도 앞바다 수중발굴 조사 장면. 조사대상 해역의 바닷속 개펄에서 김태연 잠수사가 옛 선박의 부재로 보이는 대형 나무조각을 수습해 해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이젠 배를, 배의 흔적을 찾아야 해요.”

그들은 이구동성이었다. 2년 전부터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원들이 전북 군산 선유도 앞바다 속을 이 잡듯 뒤지는 이유는 바로 옛 교역선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2022년 이래 청동기시대 갈돌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닻돌 등의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을 쏟아내면서도 여전히 배의 자취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대를 접을 순 없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서해판 무릉도원으로 꼽혔던 고군산군도 선경의 일부였던 선유도 해역은 바닷속의 고대 도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연안을 오가는 배들의 핵심 항로였기에 무수한 해양 교역사의 비사가 숨어있다. 26일 선유도의 두 암산 망주봉이 여름 햇살을 배경으로 우러러 보이는 섬 남쪽 앞바다 수중 발굴 현장이 언론사 취재진에 생생하게 공개됐다.

“큰 배의 나무조각이 나왔어요. 여기 보세요.”

뱃전의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바닥 위로 바다 밑바닥 개펄에서 막 건져 올린 크고 작은 나무 부재 조각 두개가 놓였다. 경력 20년을 헤아리는 잠수사 김태연(46)씨가 카메라 달린 밴드마스크를 쓴 채로 막 바닷속에서 수중 발굴을 마치고 나오면서 품에 끼고 가져 온 유물이었다. 조사선 남쪽 200m앞 해역 바닥 개펄에서 발견해 파서 수습한 뒤 수중을 성큼성큼 걸어와 끄집어올린 것이었다.

26일 선유도 앞바다 속 개펄바닥에서 수습돼 조사선 바닥 위로 끌어올려진 길이 1.5m 정도의 큰 나무 부재 조각. 연구소 쪽은 배의 닻을 해저에 내릴 때 고정장치구 구실을 하는 닻가지 부재로 추정했다. 노형석 기자

크고 길쭉한 부재는 길이가 1.5m를 넘었다. 두 부재 모두 바다 벌레가 오랫동안 갉아먹어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원들끼리 즉석에서 분석이 벌어졌다. 언론 브리핑을 맡았던 수중발굴과의 정헌 학예연구사는 “뱃전을 지탱하는 가룡목이 아닌가 싶다”고 우선 짚었으나 이규훈 과장과 홍광희 수중발굴 연구사는 배의 닻을 해저에 내릴 때 고정장치 구실을 하는 ‘닻가지’ 부재일 가능성이 크다고 정정했다. 길쭉한 부재의 경우 닻 본체 옆으로 십자 모양으로 걸쳐져 닻이 바닥에 깊이 박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닻가지 추정 부재의 발굴로 큰 배의 본체가 조사 해역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연구원들은 입을 모았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15분 언론사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된 수중 발굴 작업은 김 잠수사 외에 26살의 나승아 연구원이 함께 입수해 30여분간 카메라와 조명등, 산소호흡기가 달린 밴드 마스크를 쓴 채 조사를 벌였다. 지난 4월 조사에 착수한 이래 도자기 조각들은 계속 나왔으나 덩어리가 큰 유물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이날 조사에서는 돛의 일부로 보이는 큰 나무 부재와 용도 불상의 패각류가 붙은 사슴뿔 등이 나와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사슴뿔은 서해안 항로의 해저 유적에서 종종 나오는 유물이라고 한다. 녹용 약재나 장식용 등 용도를 놓고 여러 이견이 나오지만 왜 사슴뿔을 교역선에 싣고 항해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6일 언론에 공개된 선유도 앞바다 수중발굴 현장에서는 사슴뿔이 따개비 등이 잔뜩 붙은 모습으로 인양돼 눈길을 모았다. 사슴뿔은 서해안 항로의 해저 유적에서 종종 나오는 유물이라고 한다. 녹용 약재나 장식용 등 용도를 놓고 여러 이견이 나오지만 왜 사슴뿔을 교역선에 싣고 항해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2020년 연말 고군산군도 일원에 고려청자 등의 수중문화재가 나왔다는 민간 잠수사의 신고를 받고, 2021년 초부터 지금까지 군도의 일부인 선유도 해역을 특정해 꾸준히 조사를 벌여왔다. 앞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는 2002년 비안도, 2003~2004년 십이동파도, 2008~2009년 야미도에서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십이동파도에서 고려청자를 실은 옛 배의 잔해들이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고군산군도 해역은 대형 선단들이 닻을 내리고 머물기에 좋은 여건을 갖췄다. 고대부터 중국을 오가는 교역선들이 이 해역을 중간경유지로 기착했고 조선시대에는 세금쌀을 실은 조운선의 항해로이기도 했다. 12세기 고려국을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은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군산군도에 고려행 사신이 묵는 군산정이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선유도 앞바다의 해저 유적 수중조사 현장. 잠수사들이 머물고 수중 발굴 상황을 점검하는 통제실이 있는 바지선 형태의 조사선이 떠있다. 조사선 주위에는 깃발을 세운 부표를 띄워 조사 구역을 표시해놓은 것도 눈에 띈다. 국가유산청 제공
선유도 해역 조사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브리핑할 때 공개된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 수중유산 조사 현황도. 노형석 기자

지난 3년간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선유도 앞바다의 조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전체 조사대상 면적은 23만5000㎡로 현재까지 시굴 완료면적과 탐침 구간을 합해도 조사가 벌어진 구역은 3% 미만이다. 하루에 2인 1조로 오전 2번, 오후 2번씩 수중조사를 벌이는 현장 연구원들은 잠수병 위험 때문에 조사시간이 40~50분에 불과할 정도로 제약이 크지만 해양교역사의 비밀을 한꺼풀씩 들춰낸다는 의지로 조사에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21년 청자 80여점이 포개진 다발을 인근 해역에서 발굴하며 선체 탐지 발굴조사의 시동을 건 주역인 김태연 잠수사는 “무게 추를 단 조끼와 산소통, 밴드 마스크 등 30㎏ 넘는 장비를 지고 유속이 빠른 물속에서 조금씩 펄을 헤쳐가며 발굴하는 어려움이 크다”면서도 “개펄을 파는 내 손길로 우리 역사를 다시 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조사에 임한다”고 털어놨다.

군산/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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