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조건 갖춘 '대왕고래 유전'… 마지막 퍼즐은 神의 축복 [Science in Biz]

2024. 6. 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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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암·저류암·덮개암·트랩
석유 매장 필수요건 확인
'석유시추 아버지' 드레이크
19세기 중반 주위 비웃음에도
끝끝내 대형 유전 찾아내
동해유전 성공확률 높더라도
탐사과정 끈기있게 지켜봐야
동해가스전 해상 플랫폼. 한국석유공사

석유는 땅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찾는 것도 어렵지만 이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리기(시추)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필자는 대한민국 영일만에 신의 축복이 내리길 기원하며 이 글을 쓴다.

석유의 '유기 기원설'에 따르면 약 5억년 전, 지구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바다와 호수에 수많은 동식물이 등장했고 이 생물들이 죽은 후 그 시체는 바다와 호수 밑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위로 흙과 모래가 계속 쌓이고, 시체는 물 밑 수천 m의 깊은 땅속에 묻히게 된다. 오랜 기간 깊은 땅속에서 시체는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고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천연가스와 석유로 변하게 된다. 천연가스와 석유를 화석(고대 동식물의 시체) 연료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지하에 생성된 석유가 한곳에 고여 있으려면 특정 주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원암(source rock), 저류암(reservoir), 덮개암(cap rock) 그리고 트랩(trap) 구조를 알아야 한다. 유기물이 포함된 퇴적암을 근원암(또는 기반암)이라고 하며, 이 유기물이 천연가스와 석유가 되므로 근원암에서 석유가 생성되는 셈이다. 그런데 근원암에는 석유가 머물 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석유는 근원암에서 나와 물과 함께 점점 위로 이동하며 새로운 암석의 빈 공간, 즉 공극에 스며들게 되어 석유가 저장된다. 이 암석이 바로 저류암이며, 공극률이 높은 사암(또는 모래) 또는 석회암이 주를 이룬다.

시간이 지나면 저류암에서도 석유가 빠져나간다. 이렇게 빠져나간 석유가 흩어지지 않으려면 촘촘한 구조의 치밀한 암석층인 덮개암(또는 진흙)이 필요하다. 저류암 상층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뚜껑 역할의 덮개암이 있으면 석유가 덮개암을 통과하지 못해 한곳에 모이게 된다. 이처럼 석유가 모일 수 있게 해주는 지하 조건을 트랩 구조(또는 돔 구조)라고 한다.

기원전부터 인간이 사용해 왔던 석유의 첫 발견은 자연적으로 노상에 침출된 암석 오일이었다. 이때는 주로 석유의 역청(아스팔트) 성분만을 부식 방지 목적으로 목재 및 배의 코팅에 사용하거나 일부 의약품으로 이용했고, 가솔린과 같은 연료 성분은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버렸다. 인류 역사가 근대에 들어서고 약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제1차 산업혁명과 미국의 시민전쟁을 거치면서 등불을 밝히는 용도의 등유와 같은 대규모의 기름 수요가 생겼다. 노상천에서 간헐적으로 채취되는 석유와 고래에서 나오는 고래기름만으론 부족하자 본격적인 석유탐사가 필요하게 됐다.

19세기 초중반 직업이 철도 차장이었던 에드윈 드레이크는 당시로서는 기념비적인 생각, 즉 곡괭이질 대신 드릴을 땅 밑으로 사용하여 석유를 시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당시에는 지하의 저류암 구조를 찾을 수 있는 현재의 탄성파 탐사와 같은 과학적인 탐사가 불가능했기에 무수히 땅을 팔 수밖에 없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선입견을 깬 도전정신의 드레이크는 수많은 시추 실패, "헛소리 그만하시오"라는 주위의 비웃음 그리고 경제적 파산을 이겨내고 드디어 1859년 8월 27일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 지하 20m에서 기름층인 유정(油井)을 발견하였다. 어쩌면 그의 성공은 운이 따라줬기에 그리고 신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찾은 유정은 20m 지하에서 발견되었는데 조금만 옆으로 가서 굴착했으면 300m를 파야 석유가 나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시추계의 아버지'로 불리던 행운의 사나이 드레이크는 돈에 대한 더 큰 욕심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빈곤에 시달리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용감했던 드레이크 덕분에 근대의 석유산업은 시작하게 되었다.

6월 3일 한국 정부는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 미국 액트지오(Act-Geo)와 국내 전문가로부터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소 35억배럴,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 및 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물리탐사(탄성파를 발사한 후 돌아온 반사파의 파장을 분석하는 지질 구조 평가 기술) 자료 해석을 거쳐 산출한 성공 확률 20%의 수치로 시추를 통해 확인된 것도 아니고 석유 성분인 탄화수소(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유기 화합물)가 발견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 3000편이 넘는 분량의 데이터 분석 결과 △석유 매장에 필요한 트랩(동료 전문가 평가; 양호, 충족 확률 ~ 70%)과 △근원암(동료 전문가 평가; 굉장히 양호, 충족 확률 ~ 70%) △저류암(동료 전문가 평가; 동의, 충족 확률 ~ 70%) △덮개암(동료 전문가 평가; 양호, 충족 확률 ~ 70%) 등 석유의 존재를 암시하는 필수 조건인 네 가지 요인이 모두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한다(최종 성공 확률: 0.7×0.7×0.7×0.7=0.24, 24%). 과학적으로 볼 때 20~24%의 확률은 높은 편이며, 유전 가능성은 확인되었다고 평가된다. 통상 성공 확률이 12.5% 이상이면 탐사 시추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불확실성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시추를 하는 것이다.

만약 드레이크가 지금 한국에 살아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정부는 앞으로 진행될 탐사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며, 우리들은 조금은 차분하고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교단에서 늘 학생들에게 강의하듯이 '신의 물방울'이라는 와인과 '검은 황금' 또는 '흑진주'로 불리는 석유의 공통점 3개를 기술하며 본 글을 마친다. 와인과 석유는 둘 다 유기물 시체가 부패되고 변성된 황홀한 액체이다. 힘들었던 19세기 석유 시추 노동자가 마시고 버린 와인 빈 술통에 석유를 담고 판매하였기에 현재도 와인과 석유는 배럴(1배럴=42갤런=159ℓ)이라는 애매한 기본단위를 같이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통점은 최상품 와인과 석유는 신의 축복을 받아야 인간이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 개발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도박 같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왼쪽) 라병호 '배진영 교수' 유튜브 채널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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