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명예기자리포트] 전쟁 망령이 춤춘다 … 年57조 'K국방' 안뚫릴 자신 있나
110년 전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직접적인 계기는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가브릴로 프린치프(당시 19세)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차기 오스트리아-헝가리 후계자) 부부를 저격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책임을 물어 1914년 7월 28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됐다. 이에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동년 8월 4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를 하고 연쇄반응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과 오토만 제국이 참전하여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태평양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까지 전쟁은 확전됐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은 멸망하고 소련이란 공산주의 국가가 태어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잉태하는 구도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는 나라 이름조차 없던 때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우리에게 110년 전의 전쟁이 중요한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이해하고,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와 같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에 주는 교훈이 많고 국가 존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110년 전의 세계 중심이던 유럽의 복잡한 상황과 지금의 급변하는 세계 상황이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갖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유럽의 각국이 예민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배경이었다. 1848년 영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고 오토만 제국이 쇠퇴하는 상황과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흥하면서 이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는 지금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정치·경제 변화, 그리고 고립을 향한 정책과 유사하다.
1866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은 강력한 프로이센을 낳았고, 1870~18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통일 독일이 성립됐다. 러시아의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형식과 진행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이 있었으며, 이는 마치 오늘날의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꿈과 야욕을 연상시킨다. 러시아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사회적인 절망 속에서 푸틴을 환영하게 되었고 그는 러시아 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의 김정은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전쟁으로 확전할까 봐 염려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남중국해에 있다. 중국은 남해 9단선을 주장하고 있다. 남해 9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해상경계선으로, 중국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자의적으로 획정한 9개 해상경계선을 말한다. 이곳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해상 무역의 중심이자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지역이다. 9단선을 적용하면 둥사·시사·난사·중사 4개 군도를 포함하여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약 90%가 중국에 속한다.
중국이 9단선을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고대부터 이 지역을 통치해왔다는 '역사적 권원(權原)'이다. 중사 군도와 난사 군도에 대하여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은 2013년 1월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국을 제소했다.
2016년 7월 상설중재재판소는 남해 9단선 내 생물 및 비생물 자원에 대해 역사적 권원을 갖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였으나, 중국은 남중국해 해역에 인공 섬들을 건설하고 군사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재래 전력은 물론 핵 전력을 증강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호주와 일본을 비롯하여 필리핀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심지어는 베트남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한편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하고 내부 단속을 공고히 하고 있다. 북한은 핵폭탄은 물론 수소폭탄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투발 수단은 다양하고 계속 향상하고 있으며 재래식 군사력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새로운 협력 관계는 그동안 취약했던 첨단 전력을 향상시키는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북한의 민생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넘어서는 위치를 확보하여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의 위협을 먼저 보는 미국에선 북한은 위협 순위가 밀리는 형국이며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고 어느 날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보이면 섣부른 판단을 하기 딱 좋은 형국이다.
주한 미군은 한반도 안정과 방어, 그리고 전쟁 억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범(汎)미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하는 위험이 있다. 미국은 우리가 잘사는 만큼 한국 방위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고 동북아시아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미국 편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만 믿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미국이 자신의 국익 때문에 한반도를 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한국 때문에 미국 국민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안보 상황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내 나라는 내 손으로 지킨다'는 결의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2023년 군사비 지출은 세계 11위였다. 약 57조원을 국방비로 책정하고 있으며 신무기를 사기 위한 방위력개선비는 17조179억원, 군부대 운영(군사력 운영)을 위한 전력유지비는 16조8407억원, 그리고 병 봉급 인상과 의식주의 개선 등 장병 사기 진작에는 23조2683억원을 배분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3축 체계 확보, 국내 기술 역량 강화 및 방위산업 기반 강화에도 재원을 중점 배분했다.
그럼에도 대대급 이하의 무전기는 안 통하고 기관총은 나가지 않는다. 초급간부에게는 지원을 안 하고 복무 중인 군인들도 계속 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면 찬사를 받는 우리 군인들인데 기초 장비는 외국군의 조롱거리다. 왜 이럴까?
우리나라는 최첨단 무기를 갖추기 위하여 국방비의 30%를 쓰지만 명품과 국산만을 고집한다. 최첨단 무기는 있어도 탄약은 없다. 또한 국산화를 한다고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적당히 비싸야 하는데 비싸도 너무 비싸서 수출이 안 된다. 그래서 국내에 국산품 애용을 명분으로 강매하는 수준이다.
방산 비리를 막는다며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조사 기관의 처벌이 무서워 일을 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분위기다. 게다가 기초 장비에는 관심이 적어 소부대 무전기, 소총과 기관총, 개인 응급처치 장비 등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북한 무기를 얕잡아 보지만 북한의 전투기는 없어도 기초 화기는 외국에서 인기 품목이다.
훈련도 못한다. 소음 민원이 두려워서 못하고 산불이 무서워서 포탄 사격을 못한다. 훈련 탄약도 없다. 그럼에도 지휘관들은 불평을 안 한다. 훈련 탄약이 많으면 사격을 해야 하니까 차라리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군인도 많고 극성스럽게 사격하다가 불이 나거나 사고가 나면 미련한 군인 취급을 받는다.
수류탄을 던지다 보면 1만발당 1발씩 불발이 난다고 한다. 대부분의 불발은 수류탄이 터지지 않는 것이지 손에서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씩 손에서 터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 투척하는 사람은 죽고 수류탄은 터져 없어졌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원인을 찾으려고 2~3년씩 수류탄 투척 훈련을 안 한다. 당연히 원인을 찾지 못하고 지금은 연습탄만 던진다.
우리 군인들은 한우만 급식한다고 한다. 불고기를 너무 많이 줘서 반은 버린다는 과장된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밥을 먹이고 군복을 입히는 데 2조7000억원을 쓴다. 병사들 엄마들이 무서워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엄마들은 아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아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쓰이는 돈이 국방비의 5%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투서가 무서워서 전투대대장이 취사반장을 하고 밥 먹는 데 3조원 가까이 쓰면서 군인연금이 과도하다며 줄이려는 것은 직업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외에도 문제가 너무 많지만 하나만 더 얘기하면 그것은 초급간부의 지원율 하락과 초급간부의 이탈 문제다. 우리는 병 봉급 인상이 초급간부와 차이가 없어 초급간부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병 복무기간이 18개월인 반면 초급간부는 24개월 이상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다. 돈을 벌고자 군인이 되는 군인은 없다. 군인이 되는 이유는 모험과 멋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초급간부들은 전전긍긍하는 중견간부(대대장·연대장)를 보면서 지낸다. 대대장과 연대장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물론 이제는 사단장과 군단장도 파리 목숨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군인들의 책임이 크다. 과거에는 부패한 군인들이 많았고 권위주의에 중독된 사회는 군대를 더욱 불합리하게 만들었다. 국회는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이들에게 망신을 줬다.
오늘날 국회에서는 정복 입은 군인들에게 망신을 주고 현실은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힌다면서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한다. 그렇게 국방이 걱정되면 예산을 늘리고 정실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니 부하들이 상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어려운 일은 건의하지 않고 쉬운 길만 찾고 윗분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 고위직일수록 눈치만 본다. 이런 장성은 임명해서는 안 되고, 이런 국회의원은 뽑지 말아야 한다. 이 모습을 보는 초급간부들이 열악한 의식주와 병 봉급 인상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이제는 군인연금까지 혜택이 없어지면 기분이 나빠 근무하지 못한다. 오히려 돈 보고 근무 여건을 따지는 군인들만 남게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기를 갖는다고 안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10년 전의 불안한 유럽이 지금의 세계 정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가자, 그리고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크고 작은 전쟁들을 연상시킨다.
이것이 제3차 세계대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의 열병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고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우리에게 경제 규모에 맞는 스스로의 국방을 맡는 것은 물론 지역 안보와 안정을 위하여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중국과 경제를 하고 미국과 안보 관계를 맺는 시대는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흐름은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군정위 수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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