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인 줄 알았더니…암담한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 펼치는 드라마 <졸업>
‘[최선국어 표상섭T]“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라” 무료 강의 풀버전 ①’.
인터넷 강의 영상 같은 이것은 요즘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졸업>의 한 장면을 제작진이 실제 학원 강의처럼 편집한 것이다. 영상에서 최선국어학원의 강사인 표상섭(김송일)은 ‘고추먹고 맴맴 달래먹고 맴맴’이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집 보는 아기의 노래’로 한국 근대 문예사조를 가르친다. 강의는 ‘달래’의 원형이 사실은 ‘담배’였다는 내용으로 시작해 문예사조를 공부한다는 건 ‘시대의 생각’을 따라가는 과정이며 그것은 곧 읽는 이의 세계까지 넓혀준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영상은 ‘진짜 선생님인 줄 알았다’는 댓글과 함께 온라인에서 바이럴됐다. 사회탐구 영역 일타강사인 이지영씨도 “진정한 일타강사 수업 기법을 그대로 쓰시네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실제 대치동 학원 강사들의 발성과 옷차림까지 생생하게 재현한 드라마 <졸업>은 4%대라는 높지 않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교육’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졸업>의 주인공은 대치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서혜진(정려원)이다. 대학생 때 생계를 위해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이 직업이 됐다. 이준호(위하준)는 고교 때 혜진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다. 준호는 전형적인 대치동 키드다. 혜진과 공부를 하면서 8등급이었던 성적을 1등급으로 올려 명문대에 진학했고, 대기업에도 들어갔다. 혜진은 준호의 첫사랑이다. 드라마는 처음엔 혜진과 준호의 로맨스가 중심이 되는 듯하다가, 중반 이후부터 결을 달리한다. 어느 정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교육관’ 차이로 갈등을 빚는다. 드라마는 이때부터 느슨하게 썼던 ‘로맨스의 탈’을 벗고, 본격적으로 ‘좋은 국어 교육’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혜진을 영입하려다 실패한 라이벌 학원에서 일반 학교의 선생님을 강사로 끌어들이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안 그래도 희미했던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계는 더 희미해진다.
“읽는 방법을 가르칠 거예요. 텍스트랑 일대일로 맞짱 뜰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저런 문제 풀이 스킬 같은 거 필요 없이 본질로 가야돼요. (…) 우리 과목은 근본 중의 근본이에요. 홍경래의 난? 그게 무슨 난초 이름인 줄 아는 애들한테 문제집만 안겨주고 예상문제 찍어주고 문장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나 치게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말부터 가르칠 거예요. 애들 세계를 확장시키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 (준호)
“네 방법이 먹힌다면 여기 학원들이 존재해야 될 이유가 없어. 그냥 집에서 엄마, 아빠가 책이나 읽히면 그만이야. 이 입시가 생긴 이래 그런 방법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어.” (혜진)
등장인물들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교육을 받는다면 저런 고민을 하는 선생님에게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로테스크한 점은 이런 건강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 공교육 현장이 아니라 대치동 학원가라는 것이다. <졸업>은 <SKY캐슬>처럼 입시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도파민을 추구하지도 않고, <일타스캔들>처럼 일타강사를 과거 로맨스 드라마의 ‘재벌 2세 왕자님’ 같은 판타지적 캐릭터로 만들어버리지도 않는다.
드라마는 욕망으로 들끓는 대치동을 교묘하고 아름답게 편집해 보여준다. 대치동 학생들은 하나같이 얌전하고 성실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입시’라는 사실에 조금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전교 1등인 시우는 점수 자체보다 ‘진정한 배움’에 대한 욕구마저 있는 이상적 학생이고, 그가 고민을 나누는 대상은 학원 선생님들이다.
드라마 속에는 공교육이 설 자리가 없다. 현 입시 시스템에서 공교육은 아무런 권위도 없다. 공교육 체제 안에 속한 이들조차 공교육을 의미있게 여기지 않는다. 일반 학교에 있다 처음 ‘학군’ 학교로 발령받은 교사 표상섭은 첫 시험에서 중복 답안인 문제를 출제하는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혜진에게 수모를 당한다. 학부모들이 학생부에 불이익을 받을까 상섭에게는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애꿎은 혜진에게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혜진은 학교를 찾아가 ‘당신이 낸 건 요즘 수능에도 나오지 않는 낡은 문제’라며 재시험을 요구하고, 상섭은 분노하지만 결국 학교의 결정에 따라 재시험을 연다.
그는 공교육의 책임감,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부여잡고 학교 안에서 나름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시면 안되냐”는 동료 교사의 조언을 끝으로, 상섭은 학교를 그만두고 대치동 학원 강사가 되는 것을 택한다. ‘유용하다’ ‘문학을 좋아했던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며 바이럴 된 영상이 상섭의 첫 학원 강의 장면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총 16부작으로 제작된 <졸업>은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두고 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